서울 온 30년 전 '베트콩' 파월 용사와 화해의 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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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군인들이 화해의 손을 잡았다. 외교통상부 초청으로 한국에 온 베트남 재향군인 회원들이 14일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을 방문해 입원 중인 베트남전 참전군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30여 년 전엔 베트남에서 총부리를 겨누었는데…. 서울에서 만나다니, 이제 싸우지 말고 잘 지냅시다."

사선(死線)을 넘으며 20대 청춘을 바쳤던 과거의 적들이, 60대가 돼 서울의 한 병상에서 손을 맞잡았다.

14일 낮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의 고엽제 환자 병실. 외교통상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재향군인회 소속 대표단 열 명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 상이용사들을 만났다.

방문단장이자 재향군인회 부회장인 팜히우 봉(69)은 "한국과 베트남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굳게 맺어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상처를 입혔던 당사자들이 먼저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양쪽 군인을 이어준 끈은 고엽제였다. 베트남 방문단은 두 나라에서 참전군인들의 가장 큰 후유증인 고엽제 피해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고엽제 증상은 온몸이 부르트고 신경쇠약을 부르는 난치인 데다 유전 가능성이 있는 몹쓸 병이다.

한국의 상이군경회가 방문단을 보훈병원으로 안내했다. 월남전에 참여했다 고엽제 피해를 본 상이군인들이 병상에서 방문단을 맞았다. 그들 사이에 적대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베트남의 손님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베트남의 고엽제 직간접 피해자는 약 400만 명이라고 했다. 베트남 재향군인회 측은 월남전이 가장 치열했던 북위 17도선 근방의 광남성 탐키시에 1만 평 부지를 확보하고 그곳에 '한-베트남 우정의 마을'을 세울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우정의 마을 프로젝트에 15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우정의 마을은 고엽제 피해자와 중상이자, 그 후손들이 거주할 공간이라고 한다. 방문단이 한국의 고엽제 피해자에 대해 갖는 각별한 관심도 이 때문이다.

올해는 베트남 종전 30년. 우리 정부는 2001년부터 베트남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왔다. 베트남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사분야의 교류가 비교적 늦어진 편이다.

팜히우 봉 부회장은 "우리 국민의 다수는 한국이 미국의 압력으로 파병한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양국 관계의 내일을 위해 긍정적인 사고로 실질적인 협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sswook@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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