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업인 가석방, 특혜도 안 되지만 역차별도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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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수감 중인 기업인의 가석방 허용 여부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기업인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석방될 수 있다”며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 최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인 가석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된 것이다. 이와 관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찬성의 뜻을 표했고, 새누리당도 조만간 최고위원회 논의와 야당과의 협의를 거쳐 경제인 가석방을 청와대와 정부에 건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라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법무장관이 이미 허용 의사를 밝힌 만큼 사실상 동의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실 청와대 대변인이 지적한 대로 가석방 문제는 법무장관의 고유권한이므로 굳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거나 정치권의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 법무장관이 판단해서 허용 여부를 결정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법무장관이 조심스레 문제를 제기하고,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재차 허용을 촉구한 것은 기업인 가석방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특히 이른바 ‘땅콩 회항’ 소동으로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비등한 시점에서 기업인의 가석방 허용은 정부와 정치권에 모두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법규정을 넘어서 국민들의 정서적인 동의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황 장관의 발언 직후 ‘비리 기업인에 대한 특혜도 안 되지만, 기업인이라고 해서 역차별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가석방 심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진다면 요건을 갖춘 기업인 수감자를 법률상 허용되는 선처 대상에서조차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야당 일각에서도 기업인도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 가석방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다만 기업인 가석방을 투자확대를 조건으로 한 대가처럼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 기업인 사면은 원칙의 문제이지 거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