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불법 도청 테이프가 남긴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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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 기관이 불법으로 시민의 대화를 무려 10년 가까이 도청했다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생각할 수 없는 야만적인 범죄다. 그러나 지금 그 범죄의 결과물들이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 범죄를 저지른 자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는 앞으로 문명국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한국은 지금 선택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범죄의 재발을 막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도청을 기획하고 집행한 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공무원들이 국회에 와서 거짓말을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동안 국정원장들이 국회에 와서 선서하에 증언을 하면서 '도청은 없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만약 이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도청은 벌써 오래전에 중단되었을 것이다.

행정부는 정권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택하고 싶은 유혹을 항상 느끼게 마련이다. 이를 막는 헌법적 임무를 진 곳이 바로 국회다. 국회가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은 공무원이 국회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불법을 예방하는 가장 핵심적인 무기는 바로 국회에서의 위증을 막는 제도적 장치이다. 무엇보다 사법 당국이 위증을 그 어느 범죄보다 엄하고 강력하게 다스린다. 국회에서의 위증으로 수많은 공무원과 시민이 감옥에 갔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위증을 한 전 국정원장들이 죗값을 치르도록 함으로써 위증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

둘째로, 이 도청 테이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처리의 원칙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시민들로 하여금 더 이상 도청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인가 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야 할 것이다. 1994년 미국에 LA 폭동이 있었다. 흑인 범죄자(로드니 킹)에 대해 경찰이 잔혹하게 구타하는 것을 목격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우리는 지금 폭력을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폭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정의에 대한 폭력'을 먼저 규탄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요지로 사설을 썼다. 이 신문이 폭동보다도 '정의에 대한 폭력'을 먼저 규탄한 이유는 그것이 다시는 시민이 불법적으로 국가 공무원에 의해 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과거의 부조리를 일거에 고치기 위해 테이프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나쁜 점을 고치기 위해 '불법의 과실'에 의존한다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은 태우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차다.

미국에서 일란성 쌍둥이 흑인 중 한 명이 살인을 했다. 목격자도 있고 증거도 명백했다. 그러나 쌍둥이 중 누구인지를 알 방법이 없었다. 미국의 법원은 고심 끝에 두 사람을 모두 방면했다.

살인범을 잡는 것은 나라를 위해 엄청나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절차의 흠결을 무시하지 않는 자세, 그것이 오늘날 미국을 법이 존중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만들었다. 우리가 우리 사회를 고치기 위해 불법에 의존하는 이상, 그것은 사람들의 불법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을 차단하는 것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도 그를 위해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진실을 알고 싶어도 그를 위해 고문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러한 절차의 흠결의 가장 큰 피해자는 궁극적으로 우리 같은 소시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보아야 한다. 무엇이 미래에 우리 시민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것인가?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