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의 극동방문과 한반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슐츠」미국무장관의 극동방문에서는「레이건」미대통령의「보수적」인 외교접근의 성격을 깊이 느낀다. 이미 동경-북경-서울이라는 여정 그 자체가 보수적이라고 할수 있다. 이는 「키신저」의 「진보적」이었던 극동정책이 일본의「머리를 넘어」중공으로부터 시작하였다면「레이건」은 일본으로부터 아시아를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슐츠」의 동경-북경-서울을 이어가는 미국의 극동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문제는 새로이 급격하게 재편성되는 좌표속에서 우리의 지위와 위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하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그속에 「한미관계」를 어떻게 재구축하여 갈 것인가하는 문제도 된다.
아시아의 질서상의 구조와 변화는 「닉슨」의 중공에 대한 본질적인 정책의 변화에서 모든 것이 초래되었다면 역시 「레이건」이후 새로이 재편성되어온 새로운 아시아질서도 미국의 대중공정책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레이건」의 대중공정책의 기본적인 발상은 첫째 중공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닉슨」은 소련을 중공이 견제해준다고 미국이나 나트에 과시하기도 했으나 도리어 약한 중공이 군사적으로 중국북부군사지대에서 분쟁을 섣불리 야기시킬 경우 중공의 인구와 군사를 경제적으로 지원할수 있겠는가하는 딜레머가 지금 미국의 중공정책을 「레이건」이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또 약하다는 말속에는 일본을 포함하는 서방국가의 중공접근정책의 본질이나 중공의 「시장」에 대한 접근이나 기대도 사라졌다는 뜻이다. 둘째로는 중공을 통한 소련견제는 계속 필요하나 종국적으로는 중공문제는 모스크바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셋째로는 아시아에서 미국·중공 그리고 소련이라는 3자가 세력을 분할해서 「잠정협정」 같은 것을 체결해서 안정시키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최선으로 보는 것이다.
대만문제를 갖고서 중공을 견제하는 측면이나 중공에 대한 군사지원을 자제하거나 초기의 중공의 기대를 벗어나 중공이 실망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공이 「닉슨독트린」 이래 소련을 향해 신강성에 전개하고 있는 핵군사력을 다시 태평양을 향해, 가령 남만주 등에 새로이 전개하지 않는 이상 미·중공관계는 확고하다. 「슐츠」의 이번 방문의 핵심도 어느 정도의 기술이전과 먼저의 「헤이그」의 중공방문에서 약속되었던 「방어무기」를 제의하면서 소련에 대항하는 한-미-일간의 「연결」선상에 중공을 끌어들이려는데 있다.
미국은「약한 중공」을 대신하는 일본의 강화책을 통해서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보급의 필수인 대한해협의 「봉쇄」, 역시 한반도 유사시를 전제한 사세보항의 미7함대의 「모항화」, 노골적인 한일군사협력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급속한 진전으로 나아가려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중공은 미국의 요망인 북한문제하나 제어하지 못하고 김일성체제하나에 작용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슐츠」는 이번 방문에서 미국과의 「준동맹」을 지속시킬 중공측의 의사확인과 실질상 전개되고 있는 한-미-일 동맹에로의 연장을 중공에 권유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관측된다.
중공외교의 최대의 난관과 딜레머는 북한문제다. 실제 북한이 베트남처럼 소련과 연합할 경우 만주와 중공의 핵심은 완전히 소련에 의해서 포위되기 때문이다.
중공의 대북한정책인 이중정책 즉 남한에서의 미지상군의 철수를 밖으론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안으로는 한국과 서태평양으로부터의 미군사력의 철수가 소련은 물론 일본의 새로운 군사력제어라는 점에서 난관을 표시하는게 중국적 외교다. 중공은 도리어 미국에 대북한정책을 설득하고 있다.
즉 북한의 74년의 소위 「허담안」이라는 미지상군의 즉각 철수로부터 협상차원으로 말을 바꾸어 「가장 조속한 시일안에(At the Earlierst Possible Date)」라는 조건을 내세웠던 미-북한 「직접협상」에의 유인이다. 「슐츠」의 이번 중공방문에서 한반도문제를 토의한다면 바로 이점을 중심해서라고 할수 있다. 「슐츠」가 워싱턴을 떠나면서 그리고 동경에서 흘린 말속에서 교차승인에 대한 「새로운 방식」이라는 것도 실제 중공의 대북한정책을 지원하는 미국의 외교라고 할수 있다.
실제상 북한의 오늘은 최용건, 최보, 강간욱 등의 「족벌체제」의 권력적 붕괴가 시작되고 있으며 김일성도「사후」를 위해서「티토화」의 전환정책을 통해서 사후 북한의 체제를 확고히할 시기에 이르렀다.
김일성이 이번 연초에도 표명한 변하지않은 「대미평화안」이라는 미련은 김일성의 「티토화」의 암시로 예견된다. 북의 대미접근은 북한의 모든 딜레머를 풀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하나의 조선」정책을 포기하고 실제상의 「두개의 한국」을 전제한 유엔가입을 선언함으로써 한우도의 국제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뒤엎을 수도 있다.
이는 48년의 한국에 대한 유엔의 「유일합법」결의와 50년의 북한을 안전보장이사회가 「침략자」로 결의한 국제적 지위에 기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예일수 있다.
「슐츠」의 북경을 경유한 서울협상을 우리는 경솔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처음으로 노출되는「레이건」의 「보수적」인 극동정책에서 우리는 변하는 극동정책의 구조적 변화에서 한미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하는 복잡한 협상으로 임해야 한다. 물론 미국은 소련에 대한 대항정책과 군사적 조직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한-일간의 전략적 협력에 저항하는 한국, 혹은 한국의 「대소접근」에 대한 압력을 상쇄하기 위한 의도로도 미국의 북한접근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부인할수 없다. 또한 미국은 이번 서울협상에서 「교차승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점진적이며 단계적인 대북한접촉을 제시할지 모른다. 「슐츠」장관의 서울방문에서 우리국민이 관심을 갖는건 미국의 충실한 「동맹」으로서 이의 재확인을 통한 「미지상군」의 지속적인 주둔이다. 다만 미국이 촉구한 「자주국방」이라는 경제적 부담이 장차 한국의 「위기」를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군사화한 한국의 일부 군수공업의 탈출구를 한-미 경제협력이라는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진지하게 퇴의했으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 명백히 할 것은 패기넘치는 「나까소네」의 방한과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문제를 어느 정도로나마 일본에 떠맡겨도 좋다는 생각이 미국일각에나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우리국민의 확신이다.
미국의 극동정책이 과거 그러했듯이 「강화된 한국」정책이 계속되어야 한다. 「약화된 한국」은 아마도 미국의 극동정책과 극동전반의 혼란으로 연결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약력> ▲평양출신(48세) ▲연대졸 ▲동경대 및 불 소르본대졸(정치학박사) ▲주일·주불공보관 ▲연대법정대교수·연대전략문제연구소 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