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원 개편의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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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정원이 조직을 개편하면서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를 사찰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해온 대공정책실을 폐지키로 한 것은 민주사회로 가는 중요한 결단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 같은 개혁이 과거 정보기관의 폐해를 지나치게 의식해 국가정보기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임무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면밀한 사후 점검과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철저히 비밀리에 유지해온 국정원 조직과 인력상황 등이 보도자료 등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고 있는데 이것이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지 의문이다.

국가 정보기관의 특성상 비밀리에 활동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어느 나라고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대목이다. 자칫 개혁의 성과를 선전하는 데 집착하다 우방 정보기관과의 원활한 협조가 어려워진다든지, 대공.방첩활동에 지장이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국내 보안범죄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권을 대폭 축소하기로 한 것은 인권보호를 위해 당연한 조치지만 이것이 대공.방첩수사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이 간첩 잡은 실적이 있었느냐고 비판이 높았듯이 그때그때 정치 명분과 목적에 국정원이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제단은 '해외 첨단산업 정보 수집'업무를 맡게 된다고 발표했는데 해외 정보원들의 활동만 어렵게 하는 과시용이 아닌지 의문이다.

김대중 정부 초기 해외 경제정보 수집을 강조했다가 외국 정부의 경계심만 불러일으키고 실패했던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해외활동은 인력양성 등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지 국내 정보인력을 갑자기 해외활동으로 돌려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치.언론에 대한 상시출입은 금지했지만 정보수집 활동은 계속 남겨놓아 명실상부한 사찰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국정원에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 등 새로운 임무를 준 것도 적절치 않다. 그것이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기관을 정권 차원에서 활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