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펀치의 힘, 500만 달러 '러브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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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기자회견에서 강정호는 밝은 표정으로 질문에 답했다. 강정호는 LA 다저스 류현진이 자신에게는 직구만 던지기로 했다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김진경 기자]

강정호(27·넥센)가 메이저리그(MLB)를 향한 1차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강정호에 대한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최고 응찰액(500만2015달러·약 55억원)이 지난 20일 넥센 구단에 전달됐고, 넥센이 포스팅 금액(이적료)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강정호는 21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적당한 금액을 제시받았다”며 만족해 했다. 강정호는 한 달 내로 최고 응찰액을 써낸 구단과 계약하면 된다. 강정호와의 단독 협상권을 얻은 구단은 이르면 22일 공개될 예정이다.

 500만2015달러는 넥센과 강정호 모두 만족할 만한 금액이다. 이는 아시아 야수(타자)로서 역대 세 번째에 해당한다. 2000년 오릭스 외야수 스즈키 이치로(41)가 시애틀로 이적할 때 포스팅 비용이 1312만5000달러였다. 내야수 중에서는 2010년 지바 롯데가 유격수 니시오카 쓰요시(30)를 보내며 미네소타로부터 받은 532만9000달러가 최고액이었다.

 2010년 퍼시픽리그 타격왕 출신 니시오카가 MLB 진출을 선언했을 때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미네소타에서 뛴 2년 동안 타율 0.215에 그치며 일본(한신)으로 돌아왔다.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니시오카의 한계는 아시아인 내야수의 한계로 보였다.

 그러나 강정호의 펀치력은 MLB의 ‘1차 장벽’인 포스팅을 무너뜨렸다. 그의 수비력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지만 ‘장타력을 갖춘 내야수’라는 장점이 500만 달러 이상의 응찰을 가능하게 했다. 올 시즌 강정호는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유격수로서 40홈런을 기록했다. 홈런왕 3연패에 성공한 동료 박병호(52개)에 이어 홈런 2위다. 강정호가 2루수나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더라도 그의 장타력은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정호의 행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MLB 사무국이 최고 응찰액만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통보했고, 구단이 수용 여부를 발표해야 MLB 사무국이 응찰 구단을 밝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과 MLB 구단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LA 다저스 등 빅마켓 구단(대도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은 포스팅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주전 유격수 또는 2루수 보강이 절실한 미네소타·오클랜드·필라델피아 등이 강정호 포스팅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강정호는 “연봉보다 중요한 조건은 꾸준하게 출전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구단에서 화려하게 데뷔하는 것보다 주전으로 뛸 가능성이 큰 팀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투수 김광현(26·SK)처럼 포스팅을 수용하고도 계약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SK가 김광현을 배려해 예상보다 낮은 포스팅 금액(200만 달러)을 받아들였지만 김광현이 샌디에이고와의 계약에 성공하지 못했다. 강정호는 “다 잘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적료와 선수 계약조건이 비례하기 때문에 강정호의 계약은 김광현보단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정호와 포스팅 금액이 비슷했던 니시오카가 이번 계약의 참고가 될 수 있다. 니시오카는 3년 총액 900만 달러에 계약했기 때문에 강정호도 이와 비슷한 금액에 사인할 확률이 높다.

 연봉뿐 아니라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 수비 위치 거부권 등도 협상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2년 전 2573만 달러(약 280억원)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받았던 류현진(27·LA 다저스)은 협상 마지막 날까지 마이너리그 강등 조항을 두고 대립하다 결국 이 조항을 삭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류현진보다 포스팅 금액이 훨씬 적은 강정호가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을 계약서에서 빼기는 쉽지 않다. 강정호는 “MLB가 아시아 내야수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협상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유격수로 시작하고 싶지만 3루수도 문제 없다”고 말했다. 포지션 전환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계약까지 많은 고비가 남았지만 일단 포스팅 관문을 통과한 강정호는 벌써 신이 난 것 같다. 강정호는 “현진이가 (MLB 투수들의 공을) 충분히 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며 웃었다.

글=김원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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