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질소득 증가 0%가 말해준 고달픈 삶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기준 실질경제성장률이 3.3%였지만 실질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0%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분기 이후 가장 낮은 GNI 증가율이다. 한마디로 실속 없는 성장을 의미한다. 국민이 손에 쥐는 실질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일반 국민의 체감경기가 싸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는 외부 환경에 취약하다. 반도체.자동차.휴대전화.선박 등 주력 수출 상품은 치열한 국제 경쟁으로 인해 수출단가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반면 원유 등 수입원자재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 팔아도 자칫 속 빈 강정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 손에 들어와야 할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유엔도 이런 이유 때문에 93년부터 실질적인 소득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GDP 대신 GNI를 새로운 지표로 권장하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처방은 뻔하다. 내수를 부양시켜 수출 비중을 줄이고, 수출 부문도 원자재 비중이 낮고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상품에 집중하는 것이 정답이다. 수출 경쟁력 제고를 통해 국제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유전 개발 등 원자재의 안정적인 확보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2분기 GNI 증가율 0%가 던지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우선 외환위기에 버금갈 만큼 경제 환경이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위기의식을 공유하지 않으면 벗어날 방도가 없다. 또 하나는 지금이야말로 경제에 올인해야 할 시기라는 점이다. 실질소득까지 제자리걸음을 했다면 소비 확대를 통한 내수 회복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이러다간 경제성장률 4% 달성도 힘들지 모른다. 그렇다고 손 놓고 상황이 호전되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 지금은 연정 타령이나 편 가르기를 할 때가 아니다. 외환위기도 온 사회가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일치단결해 극복했음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