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원들은 느긋 수험생·대학은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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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험생들이 서울 시내 한 학원에서 논술고사 준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강남의 J학원은 31일부터 '영어논술 대비' 강좌를 중단하기로 했다. 강남 대치동 일대 논술학원들도 9월 첫째 주 시작하려던 영어논술 강의 계획을 접기로 했다. 영어 지문을 논술고사에서 쓸 수 없게 한 교육인적자원부의 논술 규제 때문이다.

하지만 학원 관계자들의 표정은 전반적으로 느긋해 보였다. 한 학원장은 "수시 2학기에만 잠깐 혼란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영어 지문을 빼더라도 논술 사교육 시장은 여전히 성황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논술 기준을 마련한 것은 본고사형 논술이 성행할 경우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수험생이나 대학에는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사교육 시장 등에는 별 변화를 불러오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 벌써 나오고 있다.

한편 7월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사교육 시장을 자극하는 주범으로 지목됐던 서울대는 "'통합교과형 논술계획'이 본고사라는 오해를 벗게 됐다"며 이번 논술 기준을 반겼다.

◆ 수험생, 대학은 혼란=10일 시작하는 수시 2학기 모집 전형을 준비하는 수험생과 대학이 이번 규제의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대학은 이번 논술 기준에 맞춰 출제해야 하고, 수험생도 지금까지 공부해 온 방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재수생 허모씨는 청와대 참여마당 신문고에 "영어 지문 해석을 요구했던 출제 흐름이 수년간 이어져 왔고, 이에 따라 준비를 해왔는데 바뀐 기준을 당장 적용하면 어떡하느냐"고 비판했다. 대학들도 이미 학부모 등을 상대로 수시 2학기 설명회까지 마친 상태에서 출제 방식을 바꿔야 한다.

현행법상 정부가 사립대에 대해 특정 입시 전형 방법이나 출제 방식을 요구할 권한은 없다. 이번 논술 기준도 말 그대로 가이드 라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기준을 어기는 대학에 대해 교육부는 학생 정원을 줄이거나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하는 등 강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수시 2학기 전형을 시행하는 대학 모두 일단 논술 기준을 지키기로 했다. 자율성을 희생하더라도 논술고사가 본고사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 사교육 시장은 태연=이번 기준은 수험생과 대학에만 영향을 미칠 뿐, 사교육 시장에는 이렇다할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 학원장은 "영어 지문을 뺀 채 논술을 가르치면 되고 수리 논술도 풀이형 대신 서술형으로 전환하면 그만"이라며 "사교육 시장은 끄덕없다"고 자신했다.

서울 강남 대치동의 조동기 국어논술학원 원장은 "대부분의 학원이 겨울부터 2008학년도 입시에 도입될 통합교과형 논술 대비 강좌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지침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고 2, 3의 경우 입시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아직도 크기 때문에 학원가는 여전히 붐빌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이번 논술 기준이 '사교육 억제'라는 측면에서는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번 논술 기준의 강도가 너무 약하다는 입장이다.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은 31일 성명서에서 "대학이 신입생을 '선별'하려는 집요한 욕구를 바탕으로 내신과 수능시험 이외의 대학별 고사에 치중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한 이번 기준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참교육학부모회도 "논술 기준 발표로는 부족하다. 논술고사 비중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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