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친일명단 발표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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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라는 단체가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1차 명단 3090명을 발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과거사 문제로 온 나라가 몰입해 있는 이때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여 새삼 몇 천 명의 명단이 발표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명단에 오른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세상을 달리해 스스로 해명할 기회조차 잃었다. 그렇다고 이 단체가 공정하다고 인정해 줄 근거도 없다. 그러니 옳고 그름의 공방만 일어나게 돼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가 친일진상규명법을 통과시켰으니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합당했다.

지난날의 역사를 바로 평가하자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라는 것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시절 불가항력적이고 불가피했던 일들까지도 지금의 눈으로 잣대를 들이댈 경우 당사자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진상을 밝힌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물론 일본 작위를 받았거나 나라를 팔아넘겼다거나 하는 명백한 친일이 있을 것이고 당시 어쩔 수 없이, 혹은 그것이 현실인 줄 알고 처신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 대해서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후자에 대해서는 '역사의 심판'이라는 기준보다는 '역사의 이해'라는 관점에서 보아주는 것이 온당하다.

논란의 초점은 친일 인사 선정의 기준이다. 일제강점 36년은 미당 서정주가 회고했듯 "그 하늘이 우리 하늘인 줄" 알았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었다. 한때 독립투사가, 항일의 날카로운 필봉을 세웠던 지식인이 부일 협력자로 돌아선 까닭을 그 시절을 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특히 발표된 인사들 가운데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그 이후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공을 세운 분들이 많다. 이들을 몽땅 친일로 낙인찍는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어떻게 유지해 갈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학문적 연구였다면 명단발표에는 조심했어야 옳다. 이런 발표행위 자체가 정치적인 행사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