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은밀한 돈 풀기 … 또 71조원 긴급 투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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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금시장이 비상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인민은행(PBOC)이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시중 금리가 오르고 있다”고 15일 전했다. 예상 밖의 일이다. 지난달 21일 인민은행은 1년 만기 대출 금리를 0.4%포인트 내려 5.6%로 정했다. 예금금리는 0.25%포인트 내려 2.75%로 정했다. 시중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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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날 이후 상하이 채권시장에선 국채와 회사채 값이 떨어지면서 시장금리(만기 수익률)가 오르기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기준금리 인상 이후~지난주 말 사이에) 국채 금리는 0.15%포인트, 신용등급 AAA인 회사채 금리는 0.35%포인트, 신용등급 AA인 회사채는 0.74%포인트 올랐다”고 보도했다. 인민은행 금리가 무력화된 셈이다.

 블룸버그는 이날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시중 자금이 호황인 증시로 몰리면서 시장 금리가 오르고 있다”고 풀이했다. 인민은행은 시장의 뜻밖의 움직임에 화들짝 놀랐다. 서둘러 자금 투하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인민은행 소식통의 말을 빌려 “4000억 위안(약 71조원)을 투입했다”고 전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자금 투입이 은밀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인민은행이 시중은행에 직접 돈을 주입하지 않았다. 국책은행인 중국개발은행에 먼저 넣었다. 시중은행은 콜시장을 통해 중국개발은행에서 자금을 빌려가는 방식이었다.

 WSJ은 “인민은행은 공식적으로는 유동성 투입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중앙은행이 통화를 완화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알리는 것을 꺼려서”라고 전했다.

 타오동(陶冬·49)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인민은행의 조용한 돈 풀기는 ‘스텔스 양적 완화(QE)’다.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를 겪기 시작한 2007년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민은행의 자산 급증이 그 증거”라고 밝혔다.

 1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민은행 자산은 2003년 1월(=100)부터 지난달 말 사이에 9배 가까이 불어났다. 2007년 이후에는 더욱 가파르게 늘었다. 위안화를 찍어 시장에 풀면서 인플레이션 방지차원에서 유동성을 흡수하는 작업(불태화)을 하지 않아서다. 전형적인 QE 기법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인민은행 자산이 공개적으로 QE를 선언한 미국과 일본은행보다 더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미 연방준비제도(Fed) 자산은 6배 정도, 일본은행은 2.5배 정도 불었을 뿐이다.

 인민은행은 올 1분기에 시중 자금을 회수했다. 자산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진 2분기 이후 슬그머니 QE를 다시 하고 있다. 돈 찍어 푸는 추세가 지난해 이전 공격적인 통화완화와 비슷해 보일 정도다.

 인민은행이 왜 스텔스 QE를 재개했을까. 로이터 통신은 “성장과 물가상승률 둔화(디스인플레이션)가 인민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의 생각을 바꿔놓았다”고 전했다. 올 3분기 성장률은 7.3%(전년동기대비)였다. 4분기엔 7%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 예측이다.

 올 11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대비 1.4% 올랐다. 한 달 전보다 오름폭이 줄었다. 미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디스인플레이션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더욱이 기업들의 순이익과 직결된 공장 출고가(생산자물가)는 33개월 째 하락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실물 경제가 심상찮아 지자 중국 정부가 가장 익숙한 수단(스텔스 QE)을 동원하고 있다. 이 결과 중국 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라고 했다. 과거를 보면 FT의 전망이 터무니없진 않다. 인민은행 자산이 2007년 이후 2배 이상 늘어나자 국내총생산(GDP) 기준 총부채 비율은 166% 정도에서 209%로 높아졌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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