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에 2700억원, 세기의 주먹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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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을 끌어오던 대결이 성사됐다. 도핑 검사와 대전료 배분 등을 놓고 승부를 피했던 메이웨더와 파퀴아오가 싸운다. 대전료 2억5000만 달러에 세계 최고 복서라는 타이틀까지 걸린, 말 그대로 부와 명예를 건 승부다.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AP=뉴시스]

‘세기의 싸움(fight of the century)’이 열린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36)와 천재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7·미국)가 마침내 맞붙는다. 대전료는 2억5000만달러(약 2760억원)가 될 거라고 한다. 1초에 1억원을 넘는 ‘돈잔치’다.

 메이웨더는 지난 13일(한국시간) 미국 유료 복싱 프로그램 쇼타임에 출연해 파퀴아오에게 “내년 5월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맞붙자”고 제안했다. 메이웨더는 “당신은 오랜 세월 날 피해왔다. 나와 맞붙을 레벨은 아니지만 팬들이 원한다”고 도발했다. 파퀴아오도 응수했다. AFP는 15일 “메이웨더가 나와 붙는다면 도망갈 곳이 없을 것”이라는 파퀴아오의 말을 전했다. 파퀴아오는 “147파운드(웰터급·66.68㎏)에서 맞붙을 것”이라며 희망대결 체중도 밝혔다. 메이웨더가 갖고 있는 세계복싱평의회(WBC)와 세계복싱협회(WBA) 챔피언 벨트와 파퀴아오의 국제복싱기구(WBO) 웰터급 벨트를 건 타이틀전으로 치르자는 뜻이다.

 파운드포파운드(체급과 관계없이 매기는 랭킹) 1, 2위를 다툰 둘의 대결은 5년 전 이뤄질 뻔했다. 그러나 ‘경기 48시간 전 도핑 검사를 해야 한다’는 메이웨더 측의 주장을 파퀴아오가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됐다. 2011년과 2012년에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혈액과 소변 검사 방식을 놓고 이견을 보여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3월 파퀴아오가 인터뷰를 통해 “진짜 남자라면 나랑 싸우자. 복싱 팬들을 기쁘게 만들자”고 제안했고, 극적으로 대결이 성사됐다.

 ◆중계수익과 입장료가 ‘돈줄’=파퀴아오는 “돈을 위해서 대결하진 말자”고 했지만 둘의 대결은 어마어마한 돈잔치다. 파이트머니는 두 선수 합쳐 2억5000만 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메이웨더가 지난해 5월 로버트 게레로(미국)와의 경기에서 받은 역대 최고 대전료 5000만 달러(약 546억원)를 훌쩍 넘는 거액이다. 12라운드(라운드당 3분) 경기가 판정으로 끝난다면 1초에 약 11만5740달러(1억2750만원)를 받는 셈이다.

 이같은 거액을 받을 수 있는 건 케이블 TV 중계수익과 입장료 덕분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복싱 경기를 보려면 유료결제(페이퍼뷰·pay-per-view)를 해야 한다. 지난해 열린 메이웨더와 사울 알바레즈의 경기는 약 220만 건이 팔려 1억5000만 달러의 중계수익이 발생했다. 장당 평균 1000달러가 넘는 입장권도 날개돋힌 듯 팔렸다. 입장수익 역시 역대 최고인 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가 맞붙는다면 당연히 이를 뛰어넘을 것이다.

 두 사람이 대조적인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둘의 맞대결은 극적이다. 파퀴아오는 빈민가 출신으로 열 네 살까지 길거리에서 빵을 팔다 열 여섯 살에 복싱을 시작했다. 주니어플라이급(48.99㎏)에서 출발해 아시아인 최초로 4체급 타이틀을 따냈다. 미국 진출 뒤 명코치 프레디 로취를 만나 기량을 가다듬은 그는 슈퍼웰터급(69.75㎏)까지 7체급을 정복했고, 복싱잡지 링 챔피언까지 합치면 8체급을 석권했다. 필리핀에서 누리는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지난 2010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지금도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통산 전적은 57승(38KO) 5패 2무승부.

 메이웨더는 엘리트 복서 출신이다. 아버지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와 삼촌들이 복서 출신으로 메이웨더는 일찍부터 영재 교육을 받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페더급에서 동메달을 땄고,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다. 메이웨더는 웰터급까지 5체급을 정복했다. 2007년 6월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9년 2월 복귀했고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47전 47승(26KO) 무패의 전적을 자랑한다. 사업 수완도 뛰어나다. 프로모터까지 겸하고 있는 메이웨더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스포츠 스타 소득 랭킹에서 2012년부터 올해까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창과 방패의 대결=스타일도 상이하다. 파퀴아오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1m69㎝의 작은 키에 리치(양팔을 편 길이)도 1m70㎝로 짧지만 폭발적인 스피드의 펀치와 푸트워크로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했다. 왼손잡이인 그는 라이트 더블 잽과 강력한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날려대며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파퀴아오가 창이라면 메이웨더는 방패다. 빠른 몸놀림으로 상대 주먹을 피하고 어깨로 막거나 흘리는 기술이 뛰어나다. 격렬한 경기 뒤에도 얼굴이 깨끗해 프리티 보이(pretty boy)란 별명을 가질 정도다. 다급해진 상대가 덤벼들면 1m83㎝의 긴 리치를 살려 때려눕힌다.

 두 선수는 전성기가 지났지만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고 있다. 파퀴아오는 2012년 티모시 브래들리에게 석연찮은 판정으로 진 뒤 후안 마누엘 마르퀘스(멕시코)와의 4번째 대결에서 6라운드 KO패를 당했다. 그러나 올해 브래들리와의 재대결에서 승리한 데 이어 20승 무패를 자랑하던 크리스 알지에리(미국)로부터 6번이나 다운을 빼앗으며 이겼다. 메이웨더는 파운드포파운드 랭킹에서 169주째 1위를 지키고 있다.

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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