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저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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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28면

죽음도 일상처럼 다가 선다. 상업영화에서처럼 극적이거나 요란하거나 난리법석이거나 하지 않다. 처마 위로 줄곧 내리는 빗줄기마냥 조용히, 그리고 언제 왔었느냐는 듯 아무도 모르게 삶도 그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98세 할아버지 조병만도 그렇게 89세의 사랑하는 여인 강계열을 두고 홀로 떠난다. 강원도 횡성에서 살아가는 이 할아버지는, 영화 속에서, 요 바로 직전까지 할머니에게 꽃을 꺾어주고, 낙엽을 가지고 장난도 치기도 했으며, 아이들처럼 눈싸움도 하고 놀았었다. 그러나 죽음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듯 순식간에 다가선다. 할머니는 그런 그를 위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돌풍

12월 11일 현재 전국 약 27개 스크린에서 개봉 2주만에 35만 4511명의 관객을 모으며 다큐멘터리계의 또 다른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한마디로 말해서 ‘노인 멜로 드라마’다. 아마도 시작은 100세 가깝게 장수하고 있는 할아버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100세 노인의 일상은 도대체 어떻게 진행될까. 그런데 막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걸 들여다 보고 있자니 예상과는 다른 풍경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로맨스가 예사롭지가 않았을 것이다.

노인들도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갈까. 그럴 수 있을까. 부부가 75년인가, 76년인가를 살았다고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도 여전히 애정이라는 게 남아 있을까. 이미 원수처럼,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조병만-강계열 부부에게 만큼은 그 얘기가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의 사랑은 아직도 펄펄 숨쉰다. 특히 남자에 대한 여자의 사랑이 눈물겹다. 사랑은 언제나 그렇지만, 나이와 상관이 없다. 가진 것과, 생김생김과, 지식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와도 별 상관이 없다. 사랑은 젊으나 늙으나 늘 순수한 법이다.

그렇다고 이다지도 주름이 깊게 핀 노인들의 러브 스토리가 큰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는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현재 입 소문에 흥분제라도 섞어 놓은 양 영화 팬들 사이에서 ‘필견’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 영화로는 박스오피스 1위이며 전체 영화로 놓고 봤을 때도 장기 흥행 중인 ‘인터스텔라’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건 좀 비정상이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일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안에는 예상을 깨고 20대 관객들이 넘쳐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뛰어 넘어 그 전 세대에 대해서까지 이해의 폭을 넓혀 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다큐멘터리의 뜻하지 않은 흥행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TV 휴먼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 차례 소개된 아이템이라는 것이 대중적 검증 망을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보인다. 그리고 노인들의 이야기일지라도 멜로 드라마적 특성을 강하게 앞장세우고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무엇보다 차분하고 감성적인 스타일의 촬영이 사람들의 마음을 오히려 더 크게 움직이게 한 것처럼 보인다. 촬영과 연출을 겸한 진영모 감독의 카메라는 비교적 정통 다큐의 그것답게 ‘담담한 응시’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능한 한 관계나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쇼트로 찍어 나갔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거의 완전하게 배제했으며 되도록이면 거리를 두고, 길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완벽한 소격효과(疎隔效果 : 관객이 배우의 연극에 몰입되지 않아야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나온,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만든 개념)가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큐 속 노인 둘과 나 자신의 관계를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만들어 줘야 할 ‘고독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셈이다. 한 마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잘 찍은 다큐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특히 냉소적인 지식인들에게는, 영화가 다소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이 영화에 왜 젊은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거대 담론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개인의 행복과 이기적인 욕망의 실현을 더 우선시 하게 된 결과는 아닐까. 뭐,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 영화가 제 2의 ‘워낭소리’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만만치 않다. ‘워낭소리’는 280만 관객을 모은 사상 초유의 다큐멘터리였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거기까지 갈까?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너무 이르다. 개봉한 지 이제 2주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사진 영화사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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