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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냄새, 도마질 소리 … 경계 허문 문화나눔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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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일 서울 서소문에서 시작된 2014 컬처디자인페어. 관객들은 개막 퍼포먼스 때 만든 볶음밥을 먹으며 문화 운동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왼쪽은 강연자였던 김준호 미리내 운동본부 대표. [사진 WCO]

공연은 칼질 소리로 시작했다. ‘또각 또각’.

 10일 오후 서울 서소문로 월드컬처오픈(WCO) 건물의 1층 카페. 공연 시작을 기다리던 관객 40여 명이 조용해졌다. 소리가 나는 곳은 카페 한쪽의 열린 주방. 요리사 김하나씨가 도마에 칼질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스피커가 놓여있었다. 규칙적인 칼질 소리는 거기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소리는 몇 번 반복된 후 리드미컬한 음악으로 바뀌었다. 김씨는 여기에 맞춰 칼질을 계속했다. 그때 객석에서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 오랜만이야. 지난번 책은 잘 읽었어.” 그는 글 몇 줄을 읽은 후 다른 이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내레이터 6명은 객석에 앉은 채 신문 기사, 편지, 산문 등을 릴레이로 읽었다. 스피커에서는 음악과 도마질 소리가 섞여 나오고 있었다.

 김씨는 요리를 계속했다. 채소를 썰어 볶다가 밥을 넣었다. 기름 냄새가 객석에 번졌다. 객석 정면의 대형 화면에는 여러 색이 교차로 점멸하고 있었다. 도마질 소리에 따라 색깔을 변하도록 해서 만든 화면이다. 퍼포먼스 시간은 15분. 요리사는 그동안 완성한 볶음밥을 종이컵에 담아 모든 관객에게 돌렸다.

 이 퍼포먼스의 제목은 ‘오픈감각 퍼포먼스-세트메뉴 O(오)’. WCO가 주최한 2014 컬처디자인페어의 개막 공연이었다. 컬처디자인페어는 ‘문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로 열리고 있다. 퍼포먼스 기획에 참여한 문주임씨는 “관객이 청각·시각 뿐 아니라 후각·미각·촉각까지 동원해 공연에 참여한 것”이라며 “그동안 문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생각을 바꾸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컬처디자인페어는 문화의 개념을 넓히고 사회와 접점을 찾는 여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강연자는 문화를 소재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었다. 어윤일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캄보디아·탄자니아 등에서 음악교육으로 커뮤니티를 변화시킨 경험을 소개했다. 다음 손님의 밥값을 미리 내주는 ‘미리내 운동’의 김준호 대표도 “우리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주제로 강연했다.

 14일까지 같은 곳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열린다. 12일 오전 10시에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13일 오전 11시엔 남북의 청년들이 모여 브런치를 먹으며 취업·연애·우정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무대는 14일 오후 5시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 하는 공연 ‘액션스테이지’다.

 이밖에도 기존의 전시·공연 개념을 바꾸는 상설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제기차기·사방치기를 할 수 있는 놀이터, 박스 모양으로 된 사진을 손에 들고 감상하는 사진전 등이다. 기획을 총괄한 정예진씨는 “이번 페어로 문화가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싹트길 바란다”고 말했다. 02-6958-8870.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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