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9)제79화 육사졸업생들(22)|장창국|학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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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군 출신 중에 학병이라는 그룹이 있다. 학도병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명칭은「학도특별지원병」이다.
말이 지원병이지 사실은 강제징집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혈서를 쓰면서 지원서를 낸 사람도 있지만 그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소수이고 그나마 친일파 아니면 비정상적인 분자들이었다.
일제는 43년 10월1일「대학생 징집연기 임시특례법」을 공포하여 종래 징집연기 혜택을 주어 왔던 전문학교 이상 대학생까지의 재학생 중에서 이공계와 사범계를 제외하고는 그 졸업자와 함께 모두 징집키로 했다.
처음 이 법령이 공포됐을 때 일부인 학생들만 해당되는 줄 알았으나 내선일체의 원칙을 적용했는지 조선인 학생들에게도 적용했다.
즉 중학교 졸업정도를 입학자격으로 하는 수업연한 2년 이상 학교의 재학생·졸업생은 43년 11일20일까지 관할지 군사령관에게 지원서를 제출하고 44년 1월20일 입영하라는 명령이었다.
일본으로서는 여러 가지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미국의 롤백 작전이 주효하여 전국에 패색이 짙어 갔고 전선의 확대에 따라 병력도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인은 그들 학생·지식인들이 조선인의 반일·반전 민족주의 사상의 구심적 요소들로서 이들이 사회 속에 있는 한 후방이 위험해 질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을 몽땅 끌어다 일본 부대 안에 수용하여 엄격한 조직 속에 묶어 버리려는 것이었다.
당시 이 법령에 해당되는 조선인은 국내 전문·대학생, 일본 유학생 및 그 졸업생들을 합해 총 6천3백여 명이었다.
일본은 전체 행정력과 친일단체·친일파·언론 등을 총 동원하여 이들을 설득하고 불응하면 연행하거나 부모를 못살게 굴어 대상자의 70%에 이르는 4천3백85명의 지원서를 받아 내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44년 1월20일 조선에서는 평양과 대구의 일본부대, 일본에서는 학교소재지에서 가까운 부대에 입영했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이원경 체육부장관, 박동진 전 외무부장관을 비롯하여 구태회 럭키그룹 회장, 고상겸 동방생명 사장, 조영식 경희대 전 총장, 이재철 국민대 총장 같은 분들도 이때 끌려나갔다.
학병출신들은 마의 입대 날짜를 따서「1·20동지 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지금도 모임을 갖고 있다.
학병들은 사범 또는 하사관으로 복무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간부 후보시험을 거쳐 예비사관학교를 나오면 소위로 임관시켰다. 장교가 된 분은 1백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장교출신들은 해방 후 대거 건 군에 참여하여 초창기 우리 국군의 중심세력을 이루었다. 그들은 강제로 끌려나갔다는 점에서 명분이 떳떳했고 나이가 젊은데다 지식 수준도 높아 괄목할 만한 발전과 성장을 보였다.
그들 가운데서는 장성급이 40명 가까이 나왔고 대장 급이 6명, 참모총장 6명, 합참의장 2명이 나왔다. 실로 눈부신 진출이다.
군의 최고 정상(대장·합참의장·참모총장)을 거친 8명만 들어보아도-.
▲민기식=만주 건국대학 재학 중 입대 충북 청원 출신, 군영, 7연대장, 5사단장, 2군사령관, 참모총장 역임, 대장, 충비 사장, 국회의원 무임소장관 역임, 목장 경영.
▲김용배=경성제대 법과재학 중 입대, 서울 출신, 제8·7사단장, 일군단장, 육사교장, 2군 사령관, 참모총장 역임, 대장, 충비, 대한중석 사장 역임.
▲최영희=일본 전수 대 법과 재학 중 입대, 군영, 5군단장, 교육총감, 2군사령관, 참모총장, 연합의장, 국방장관, 터키대사, 국회의원 역임.
▲장도영=일본 동양대 재학 중 입대, 군영, 8사단장, 2군단장, 참모차장, 교육총감, 2군사령관 역임, 5·16당시 참모총장, 반혁명관계로 사임·구속, 현재 미 미시간 대학 교수.
▲김종오=일본 유학 중 입대, 군영, 사단장, 참모차장. 1군사령관, 합참의장 역임, 장도영 후임 참모총장, 대장, 작고.
▲한 신=일본 중앙대 재학 중 입대, 함남 영흥 출신, 2기, 수도사단장, 군단장, 2군, 1군사령관, 합참의장 역임, 대장, 5·16때 최고위원, 내무장관, 75년 예편 후 아세아자동차 사장, 현재 대한중석 사장.
▲백석주=일본 와세다 대, 경남 진주출신, 8기특, 8사단장, 주미 무관, 육대 총장, 육사교장, 한미 연합사부사령관 역임, 대장, 현재 한양화학 사장.
▲김계원=연희전문 상과, 경북 영주 출신, 군영, 7사단장, 5군단장, 1군사령관, 참모총장 역임, 대장, 중앙정보부장, 주중대사 역임, 연세대 명예법학박사,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중 10·26사태 일어나 구속.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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