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명예 침해해도|공익 우선 일 땐 무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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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무의원이 국회 답변에서 개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발언을 했더라도 침해정도가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 한 위법성이 없어진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민사지법 합의7부(재판장 최종백 부장판사)는 19일 증권관계 월간지 발행인 이 모씨(73·서울 후암동)가 전 법무부장관 정치근씨(51·서울 성산동 49의5)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밝히고 원고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 이씨는 정씨가 법무부 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지난 5월31일 이철희·장영자 사건을 따진 제113회 임시국회 법제사법 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면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위자료 3천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정 장관퇴임후인 지난 7월26일 냈었다. 장관의 국회에서의 발언을 문제삼아 개인이 장관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법원이 장관의 국회 답변행위를 공익에 속하는 시정행위로 규정, 발언내용이 실사 개인의 명예를 해쳤더라도 정도가 뚜렷하지 않으면 개인의 법익보다 공익을 우선시켜 위법성 조각(조각)사유로 본 것은 주목되는 판결로 지적되고 있다.
정 장관은『이씨에 대해 검찰의 불법여부 수사내용에 대해 말해 달라. 이·장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구체적 내용을 말해 달라』는 김영준 의원(민한) 질의에 대해『총회 꾼 중의 하나인 증권관계 월간지의 발행인 이씨가 자신이 소액주주로 되어 있는 상장법인의 사장이나 간부들을 협박하여 광고 게재를 강요하고 광고료 10만∼25만원씩을 갈취한 사건으로 조사한 일은 있으나 그것이 이철희·장영자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답변했었다. 이씨는 이같은 정 장관의 답변이 자신이 총회 꾼인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보도되게 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검찰이 소위 총회 꾼 을 단속하면서 지난 2월22일 자신도 같은 협의로 부당하게 연행수사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피고 정씨의 답변은 민주국가에 있어서 국회의 국정 감시 권에 근거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하여 국무위원이 진실을 숨기지 않고 답변함으로써 얻어지는 적정한 시정(시정)이라는 공익인바 이 답변으로 침해될 수 있는 원고 이씨의 개인적 법익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원고의 명예 침해정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정도라든가 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관의 답변 행위는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피고 정씨의 답변 내용은 수사경위를 사실 그대로 보고한 것이고 답변 동기나 목적이 오로지 법령에 의한 의무의 이행에 있을 뿐 개인의 법익을 취해 하겠다는 고도의 고의 또는 과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원고 이씨는 지난 10일 공영토건 소액투자자 보호기구를 만든다며 3백90여명으로부터 1인당 3만원씩 받아 그중 7백여 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되어 현재 구치소에 수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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