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선자금 수사 반대, 늦었지만 바른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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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자금 수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엊그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 석상에서다. 그는 "과거사는 적당하게 얼버무리고 묻어 버릴 일은 아니지만 필요한 수준에서 정리해야지 끊임없이 반복하고 물고 늘어질 일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그러면서 "97년의 것을 가지고 왕년의 후보들을 다시 불러내라는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 아니냐"고 반문했다.

옳은 얘기다. 이미 전임 정권에서 검찰의 수사가 있었고 그에 따른 적절한 책임을 물은 같은 사안에 대해 재수사를 한다는 것은 상식을 넘어서는 발상이다. 더욱이 불법적 방법에 의한 도청 테이프가 재수사의 계기가 될 수 없다. X파일 사건의 발생 초기만 해도 검찰은 이 같은 원칙적 입장을 견지했었다.

그러나 검찰이 얼마 전부터 97년 대선자금과 관련된 세풍사건 기록을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이 불법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자는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마당에 검찰로서도 입법에 대비하자면 기록 검토를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97년 대선자금 수사에 반대한다고 하니까 "전임 정권을 봐주기 위한 것이냐" 또는 "2002년 대선자금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야당의 공격을 받는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97년 대선자금을 재수사한다면) 대통령으로서 내가 너무 야박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가뜩이나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이라고 지적받는 판에 '야박' 운운의 표현은 재수사 반대가 마치 야당에 은전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들린다.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재수사에 반대한다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면 된다. 여당으로 하여금 국회에 제출한 특별법부터 거둬들이도록 해야 한다. 사실 과거 문제는 진작 이런 식으로 매듭지어야 했다.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확고하게 나갔다면 과거 문제로 나라가 뒤범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말을 실천으로 옮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