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아침만 되면 우울한 당신, 뇌가 방전된 거예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Q 3개월 후면 아빠가 되는 자영업자입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 직장인이었는데 저만의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직장생활 할 때보다 훨씬 자유롭긴 하지만 동료와 함께 어울릴 수 없다는 현실이 때론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혼자 일하고 마땅한 대화 상대가 없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최근 들어 아침에 눈을 떠 출근 준비를 할때면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이 주체 못할 정도로 무수히 떠올라 당황스럽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한 기억, 그걸 막아보겠다고 비굴하고 부끄럽게 행동한 기억 등이 말이죠. 이렇게 아침부터 부정적인 생각으로 시작해서인지 하루 종일 웃을 수 없는 일이 매일 벌어지곤 합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항상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데 왜 아침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이 몰려오는지 말이죠. 이 부정적인 생각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A 아침과 점심, 저녁 중 우울증 환자의 컨디션이 가장 좋지 않을 때가 언제일까요. 상식적으로 하루의 피로가 쌓이는 저녁이나 밤일 것 같은데 예상 외로 아침입니다. 아침에 가장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눈 뜨자마자 느끼는 내 감정이 진짜 내 속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오후가 되면서 차츰 마음이 좋아지는 건 처진 내 마음을 내가 열심히 조정해 일으켜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억지로 마음을 일으켜 세우니 뇌 에너지는 더 많이 빠져 나가고 그러다 보니 아침이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무기력감이 더 커지기 쉬운 거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부정적 생각이 많이 든다면 ‘요즘 내 뇌가 지쳤구나, 좀 충전을 해줘야겠네’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스마트폰이 방전됐을 때 방전 표시등이 켜지는 걸 생각하면 됩니다. 아침의 부정적 생각은 뇌의 방전 신호인 셈이죠. 뇌의 감성 배터리가 방전돼 소진 증후군(번아웃 신드롬)이 찾아 온 겁니다.

소진 증후군이 찾아 오면 현재에 대해 긍정적으로 몰입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현재에 몰입하기 어려우니 과거의 부정적 기억에 집착하게 되고요. 결국 과거의 부정적 기억이 현재 나의 정체성마저 슬프게 만들어 버립니다.

다시 말해 사연 주신 분은 지금 뇌를 충전할 필요가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뇌가 방전될 정도로 열심히 살았네’ 라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세요.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방전된 것이지 방전된 삶 자체가 잘못된 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부정적인 옛 생각이 많이 나는 건 현재에 대해 몰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탓하며 억지로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지 마세요.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면 현재의 내가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이야말로 가짜 감정입니다. 그냥 뇌가 피곤해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속지 마세요.

임신한 아내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 이것 하나만으로도 참 따뜻하고 좋은 분이란 인상이 드는군요. 현재의 내 감정이 부정적이라해서 내 삶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울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한 삶입니다. 억지로 감정을 조정하려고 하면 오히려 뇌를 더 지치게 만들어 부정적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수용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렇게 수용할 수 있어야 뇌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수용이 뇌 충전의 준비 단계인 셈이죠.

준비를 했으면 이제 뇌를 충전해 주세요. 우리 뇌도 스마트폰처럼 에너지원과 연결돼야 충전이 됩니다. 보내주신 사연에 답이 있습니다, 대화 상대가 없어졌다고 했죠. 우리 뇌는 다른 사람과의 따뜻한 연결, 혹은 자연이나 문화와의 교감이 있어야 충전이 됩니다.

Q 누군가와 만날 필요가 있겠군요. 그런데 문제는 그러고자 하는 의욕이 없습니다. 쉬는 날이면 그냥 집에서 쉬고만 싶습니다. 이러다가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겠다는 걱정이 들기도 하고, 또 누구랑 이야기 나누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누구를 만날까 고민도 해 보지만 썩 내키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친구는 이래서 싫고 저 친구는 너무 바빠서 나를 귀찮게 여길 것 같고요. 대안으로 취미라도 가져볼까 하는데 항상 마음이 바쁘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고, 누굴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이 마음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꿀 같은 휴일이 찾아 왔는데도 쉬지 못하는 것을 심리적 회피 반응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을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만나거나 문화를 즐겨야 하는데 뇌가 너무 지친 나머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현실에서 그냥 도망만 치고픈 마음이 드는 거죠. 회피 반응을 보인다는 건 뇌의 감성 배터리가 그만큼 방전됐다는 증거입니다.

심리적 회피 반응에 대한 해법으로 행동활성화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 맞는 말입니다. 마음이 지쳐 있으니 머리로는 친구도 만나도 문화생활도 즐기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충전해줄 에너지원과 만나지 못해 우리 마음은 더 지쳐만 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행동활성화법은 힘을 내 몸을 움직이다 보면 거꾸로 마음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과거의 행복했던 일을 해보는 것입니다. 옛 기억을 되살려 내가 행복했던 순간의 사람과 장소를 찾아 내고 그 사람과 그 순간을 다시 경험하는 거죠.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했다해도 조금씩 긍정적 마음이 되살아나면서 긍정적인 행동을 강화하게 됩니다.

올 한 해를 보내며 내 과거를 섬세하게 만져보면 어떨까요. 과거 내가 즐겁게 뛰놀던 장소, 나의 뜨거운 열정과 관련된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 보는 거죠. 그리고 그 시절 기억을 세세히 되밟아 보는 겁니다. 어떤가요. 오래 된 로맨스 흑백 영화를 보는 것처럼 과거가 오늘과 연결돼 촉촉한 희열을 만들어내지 않을까요.

과거 다시 경험하기와 더불어 하루의 일상을 적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일상을 적는 것, 사소한 일 아니냐고요. 하지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이런 게 내 미래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을 적는 게 미래의 오늘을 재발견하게 하는, 다시 말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죠. 타임캡슐처럼 오늘 적은 내 느낌과 일상의 행동이 미래에 내가 다시 봤을 때 그 미래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다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오늘을 적어 놓는 것이 미래에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Q 마음이 편치 않아서인지 임신한 아내와도 말다툼을 많이 합니다. 친구도 만나고 운동 좀 하라는 고마운 말을 하는데도 그게 잔소리로 들려 ‘내가 먹고 살려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느냐’며 화부터 냅니다. 그럼 아내도 울며 ‘나랑 결혼한 걸 후회 하느냐’ 며 서운해 합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내를 달래 주거나 아니면 아예 더 큰 말다툼으로 진행시키는 건데 둘 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마음은 늘 임신한 아내를 잘 돌봐주고 싶은데, 왜 이리 몸이 안 따르는지, 마음과 행동을 일치시킬 방법은 없을까요.

A 우선 임신한 아내는 정상인 환자라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임신으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 그리고 몸 안에서 출렁거리는 호르몬 변화로 정서적 불안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임신으로 인한 아내의 정서적 불안정을 탓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소진 된 상태니 나도 모르게 미운 말이 입에서 튀어 나가는 겁니다. 지친 뇌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공감은 상대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상당한 감성 에너지 소모가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 에너지가 다 빠져 버린 소진 상태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뾰족한 말이 나가기 일쑤 입니다. 말 해놓고 속상해 하고 또 화 풀어 주려고 애쓰다 보면 뇌 에너지는 두세배 더 달아 버립니다.

아내에게 이쁜 말을 하자, 라는 생각도 실은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일부러 이쁜 말을 안 하려고 작정해서 미운 말이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단지 뇌 상태가 어려우니 미운 말이 나가는 겁니다. 임신 역시 신체적, 심리적으로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기에 아내도 아마 소진된 상태일 겁니다. 서로 소진된 두 사람이 본의 아니게 서로를 긁게 되는 것이죠.

두 분만의 독서클럽을 권하고 싶습니다. 함께 서점에 가 이번 주의 책을 골라 보세요. 그리고 책에 대해 이야기 하고요. 내가 책을 보는 것 같지만 책의 내용과 인물에 빠져 들면 그 책이 나를 보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길러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상대방 역시 상대방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힘들어 죽겠는데 바가지나 긁어대는 마누라가 아니라 내 아이를 가진 이쁜 아내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