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끊이지 않는 로비, 개혁은 말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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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던 검은 로비의 실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외 인력송출 브로커의 정치권과 검.경.언 로비 의혹 사건에 이어 한 드라마 외주 제작사가 방송사 간부 등에게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적힌 자료가 언론에 공개됐다.

MBC 보도담당 간부와 기자들이 연루된 송출 브로커 사건은 그야말로 로비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는가 하면 정치권과 검찰.경찰.금융기관.군 관계자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진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누가 어떤 로비를 받았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로비 대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30여 명에 이른다니 얼마나 광범위한 로비 시도가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드라마 외주 제작사의 문건도 가벼이 넘겨선 안 된다. 여기엔 2003년 방송사 간부 등에게 5000만원 이상의 금품을 건넨 것으로 적혀 있다. 특히 KBS에서 파견된 PD들에겐 '야외비' 명목으로 매달 수백만원씩 3600만원 이상을 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사자들은 정육 세트 등 명절 선물을 받았을 뿐 상품권이나 현금은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매달 수백만원씩을 받았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CPI)는 조사 대상 146개국 중 47위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4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국가청렴위원회 신설 등 정부의 부패 근절 다짐에도 불구하고 CPI가 처음 발표된 1995년 이후 10년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최근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로비 실태들을 보면 지난 3월 정부.정치권.재계와 시민사회 대표들이 서명한 '투명사회 협약'이 무색할 정도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불법 로비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그러려면 형사처벌뿐 아니라 정치자금 조달 방식 등 시스템 개선과 각 분야의 자정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