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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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먹물을 뿜는다 하여 너희는 나에게 고상한 이름(文魚)을 붙여 주었다. 그렇지만 나의 이미지는 여전히 고약하기 짝이 없다. 너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성인을 망측하게도 나와 똑같이 그렸다.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에선 잠수함과 맞붙는 바다 괴물로 묘사했다. 서양인은 나를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라 손가락질한다.


그러면서도 나를 최고의 먹거리로 치는 게 너희이다. 제사 때마다 가장 중요하고 비싼 몸이 된다. 제대로 된 탕국에는 나를 빼놓지 않는다. 무수한 빨판을 하늘의 별로 여겨 나의 발에 수없이 칼집을 내 제사상에 포로 올리지 않느냐.

나는 영리한 무척추동물이다. 너희의 실험에서 나는 미로를 통과했고, 병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러나 물밑 세계에서 나는 굼뜬 편이다. 머리만으로 안 되는 게 야생의 세계다. 해서 익힌 게 세 가지 비술이다. 나의 눈은 색맹이지만 빛의 파동을 감지할 수 있다. 멀리 떨어진 배우자나 먹잇감을 찾기에 불편이 없다. 둘째는 위장술이다. 혈액으로 신호를 보내는 카멜레온과 달리 나는 신경 조직을 통해 순식간에 피부색을 바꿀 수 있다. 마지막은 인내다. 포식자를 만나면 나는 구멍을 찾는다. 그 좁은 공간에서 내 몸을 뜯어먹으며 반년을 버틴다.

너희의 오해와 달리 나는 매우 윤리적인 생물이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간혹 발이 얽힌 채 붙잡힌다. 너희는 서로의 발을 뜯어먹는 금수 같은 짓이라 욕한다. 그러나 이는 생식을 위한 성스러운 교미행위일 뿐이다. 고백건대 나의 셋째 발이 바로 생식기다. 하필이면 그 소중한 때, 우리 형제자매를 낚아 올리는 너희가 어찌 윤리를 입에 담느냐. 윤리로 치자면 우리 자매들의 장엄한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 암컷들은 산란 뒤 6개월간 알을 지키다 탈진 끝에 숨을 거둔다. 사체까지 고스란히 먹이로 제공한다.

이런 나를 두고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이니, 바람둥이의 문어발식 사랑이니 하며 빗대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최근 검찰.경찰.방송국 인사가 연루된 인력 브로커 파문에서 '문어발식 로비'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문어발이 아무리 씹히는 맛이 좋기로서니 함부로 남을 씹는 데 들이댈 일이 아니다. 너희 법정이 양심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명예훼손 소송을 허(許)하라.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