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윤이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고 윤이상(1917~95)씨의 삶을 따라가면 역시 그 시대를 질식시킨 정치적 음모가 발견된다. 56년 파리를 거쳐 이듬해 독일로 간 그는 음악에 빠진 동양 출신 40세 늦깎이 유학생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에 자주 그랬듯 독재의 검은손은 어느 날 느닷없이 그의 목을 죈다. 67년 '박 대통령 비서'를 사칭한 전화로 시작된 '윤이상 납치'는 간첩으로 조작되는 사태로 이어진다. 본인 표현에 의하면 통나무에 매달려 질리게 물고문당한 끝에 '나는 북한에 봉사하는 공산주의자'라는 자술서를 썼다. '간첩'이 된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5년, 10년으로 감형된다. 당시 190여 명이 곤욕을 치렀다. 소위 동백림 사건이다.

그가 63년 평양을 찾았다고 공산주의자로 몰기엔 무리해 보인다. '친북'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윤이상 전기 '상처 입은 용'(77년)에서 윤씨는 북한에 꽤 비판적이다. "나의 북한 여행은 커다란 상찬과 깊은 위화감이란 이중 결과를 가져다준 채 끝났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건 이후 북한과 밀접해진다. 고 김일성 주석은 90년 그에게 평양 근처에 개인 별장을 주었고 요양도 하게 했다. 그걸 또 다른 조국에 대한 애정이라 해야 할지 윤씨가 고인이 된 마당에 가릴 길은 없다. 동백림 사건이 국정원의 7대 과거사 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니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아쉬운 것은 정치에 가려 윤이상 음악에 대한 대중적 평가가 약하다는 점이다. 그는 58년부터 실내악.오페라.협주곡.교향곡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작곡을 했다. 130곡은 족히 넘는다. 그가 68년 풀려나 독일로 귀환한 직후 공연된 오페라 '꿈들'에 대해 '디 차이트'는 '제1급 음악적 사건'이라고 극찬했다. 72년엔 뮌헨 올림픽 축전 오페라도 썼다. 그는 생존 당시 '현존하는 유럽 5대 작곡가'로 꼽혔고, 미국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교수진이 선정한 '사상 최고의 음악가'에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우리에게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 18일 '윤이상 평화재단 창립식'이 열렸다. 그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상처 입은 용' 꿈을 꾸었단다. 분단으로 상처받은 그가 평화재단을 통해 '음악의 용'으로 한국에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치부 안성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