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정신연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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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며칠전 모 일간지는 「무질서박람희」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사회면에서 크게 취급한 적이 있다.
내용인즉 건국이래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82 국제박람회」가 한국인의 형편없는 공중도덕심 때문에「무질서 박람회」로 얼룩지고 있다는것이다. 쓰레기통은 반도 채워져있지 않은데 주변은 먹다버린 나무도시락, 빈 콜라깡통, 휴지등으로 온통 쓰레기밭을 이루었고, 화장실의 두루마리 화장지와 플래스틱 재떨이도 수시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발기사를 대할 때마다 도대체 왜 그와같은 무질서가 계속되며, 한국인의 치부이자 고질병인 이「무질서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수 있는 묘약은 없을까하는 의문을 갖는다.
오늘날 우리는 후진국의 문턱을 넘어서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국력의 신장을 찬양한다. 사실 지난 20년간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결과 적어도 물질적인 생활면에서는 선진국사람들의 생활을 어느정도 흉내내어 볼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시민윤리의식에 기초한 정신문화생활에서는 그들보다 훨씬 뒤져있다.
집안에서는 TV·냉장고·세탁기등의 서구적 물질문명의 혜택을 만끽하면서도 밖에서는 거침없이 가래침을 내뱉고 기분내키는대로 방뇨하며 오물을 버리는 낮은 정신연령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한국인을 공중도덕생활의 저능아로 만드는 것일까? 물론 여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원인은 잘못된 교육관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자녀에 대한 한국인의 가정교육은 일반적으로 탐애형 아니면 전제형으로 나타난다. 즉 아이들 스스로가 처리할수 있는 일도 부모가 대신 해줌으로써 아이들을 극단적으로 보호하거나 아이들의 요구를 이해하지 않고, 명령과 지시에 의해서 억압적으로 복종시키려한다. 이러한 가정에서의 교육태도는 다만 탐애형이 전제형으로 수렴된 상태에서 그대로 학교와 사회로 연장된다.
이리하여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고 통치가 행해진다. 그결과 감독과 지시를 받지않는 상황하에서의 자율적 행위조정능력은 제로수준에 머문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규칙을 지키던 아이들이 교문만 나서면 제멋대로다. 귀성객을위한 예매표장에서는 감시인의 장대가 휘둘러져야 질서가 유지된다.
혹자는 이러한 무질서 병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관계법을 만들어야한다고주장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어디 법적인 구속력이 약해서 함부로 침을 뱉고 보도를 횡단하는가? 법적인 제재에는 한계가 있는것이다.
문제는 어려서부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데 있다. 즉 명령과 강제가 아니라 설득을 롱해 복종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아동 스스로가 문제를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인도하는 교육풍토가 전제되어야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민주적 발상이 통치수준으로까지 연결될 때 국민각자는 스스로 책임있는 행동을 할줄 아는 민주적 시민의 자질을 갖추게 될 것이다.
심윤종
▲1941년 황해도장연출생 ▲성균관대·독하이델베르크대졸 ▲사회학박사 ▲(현)성균관대교수(사회학) ▲저서 『사회과학의 철학』(공저)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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