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사업도 기업 형태가 효과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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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벤처 1세대 기업인 5명이 ‘부(富) 사회환원’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 벤처투자처럼 인재와 기업·단체에 자금 지원은 물론 인력·전략까지 함께 투입한 뒤 꾸준히 성과를 점검하는 기부 방식이다. 지원 목적 역시 단순한 재정적 도움이 아닌, 지원 대상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범수(47)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47) NXC 대표, 김택진(48)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46) 다음 창업자, 이해진(47)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새 기부문화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주인공들이다. 이들 ‘빅5’는 지난 5월 설립한 유한회사 C프로그램을 통해 늦어도 내년 초에 과학·교육 NGO인 ‘내셔널지오그래픽소사이어티’에 대한 첫 후원을 개시할 예정이다. <본지 11월 28일자 1면>

 20년 동안 각자 사업에 집중했던 이들이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벤처자선’사업에 뛰어들자 그 이유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넥슨 관계자는 “5명은 인터넷 게임·포털 분야를 개척해 새 시장을 만들어 낸 주역들이지만 어느새 40대 부모가 되고 벤처 선배가 되면서 후세대를 위해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오래전부터 고민했다”고 말했다. 기존에 각자 기업에서 하던 기부·봉사 방식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김택진 대표는 “사회공헌도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 다.

 빅5의 초점은 창업보다 대기업 취업을, 창의적인 사고보다 정답만을 좇는 사회에서 ‘혁신’을 끌어내자는 데 모아졌다. 머리를 맞댄 이들의 결론은 ‘기업’이었다. 유망한 기업·인재에 투자함으로써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기업의 활동이 자선사업에서도 성과를 낼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김범수 의장은 최근 콘퍼런스에서 “사회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C프로그램 엄윤미 대표는 “요즘처럼 창의적·혁신적인 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대에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업이 자선사업에서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자선재단은 설립 시 신고한 분야로 후원 대상이 제한돼 있다. 단순 기부금으로는 빅5가 추구하는 창의·도전·변화·협업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판단도 했다. C프로그램은 후원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에 따라 평가를 거쳐 추가 지원을 결정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5명의 우정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 85학번으로 선배인 김택진 대표와 86학번 3인(김범수·김정주·이해진), 이재웅(연세대86)씨는 오래전부터 경쟁하며 함께 성장한 친구들이다. 이들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동기이자 KAIST 대학원 기숙사 룸메이트(김정주·이해진), 같은 아파트단지 친구(이재웅·이해진), 삼성SDS 입사 동기·NHN 공동창업자(김범수·이해진)다.

박수련 기자

 

◆벤처자선(Venture Philanthropy)=벤처기업의 투자 원칙과 경영 방식을 따르는 후원사업. 이를 수행하는 자선벤처기업은 벤처투자자처럼 측정 지표에 따라 심사해 후원 대상을 정하고, 대상 기업·단체·인재의 가치가 높아지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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