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 불안이 빚어낸 대실착, 1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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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제7보 (111~127)]
黑. 도전자 옥득진 2단 白. 왕 위 이창호 9단

계산할 수 없는(인간의 계산력이 미치지 않는) 것을 계산하려 할 때 대국자는 막막하고 곤혹스럽다. 한 수의 의미는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에 파장을 일으키며 계속해서 뭔가를 변화시킨다. 그 끝없는 파장의 총계를 수치로 환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곧 바둑의 신일 것이다.

우하귀를 111로 막을 때만 해도 옥득진 2단은 형세를 회복했다는 데 안도하고 있었다. 용기있게 던져진 흑▲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흑은 그 희생을 통해 미세하게 뒤지던 형세를 만회했다.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을 때 이창호 9단이 중앙을 112로 젖혀왔다.

받아야 할까. 옥득진은 갈등한다. 받아주면 그만이지만 극미한 형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의심과 욕망 사이에서 한없이 흔들린다.

옥득진은 113을 하나 선수하더니 결단을 내려 115로 갔다. A 부근의 엷음을 노리는 수. 그러나 당장에는 아무 노림이 성립되지 않기에 어딘지 어정쩡한 수. 그래서 실은 아무것도 아닌 수. 이럴까 저럴까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이 수를 만들어냈다.

▶ 참고도

"대실착이었습니다"라고 국 후 옥 2단은 고개를 숙였다. 이 수로는 '참고도' 흑1을 미련 없이 선수해 버리고 3으로 늘어둬야 했다. 이것으로 희망이 있는 국면이었다.

116부터 이창호 9단의 칼질이 시작됐다. 117로 우그러진 것은 두 집일까. 118을 선수당한 것은 서너 집이고 120마저 선수로 듣자 중앙 백이 은근히 두터워졌다. 112를 외면한 벌은 이토록 확실하고 혹독했다. 하지만 115는 뭔가. 백이 손을 뺐어도 당장은 아무 타격도 가할 수 없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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