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등교 신중했던 조희연, 외부 회의 다녀온 뒤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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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유치원 정책을 바꾼 건 파장은 외면한 채 자신의 이상과 철학을 앞세운 결과라는 지적이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는 27일 “교육정책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직결되기 때문에 대상자가 이해할 시간을 주고 부작용을 예측해야 하는데 자신의 논리를 앞세워 급히 하다 보니 혼선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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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교육감이 취임 후 내세운 정책을 보면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선거 때 한배를 탄 진보진영 입장을 대변하는 정책이 양산된 것이다.

 자립형사립고(자사고) 폐지가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자사고를 확대하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 측은 ‘특권 교육’이라고 비판했다. 진보교육감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고, 조 교육감은 지난 9월 자사고 6곳의 지정 취소를 발표했다. 전교조 등 진보인사들은 서울시교육청 간부식당에 1박2일간 진을 치고 자사고를 폐지하라고 조 교육감을 압박했다. 결국 조 교육감은 진보진영 뜻대로 움직였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갑자기 시행한 ‘오전 9시 등교’에 대해서도 당초 신중한 입장을 보이던 조 교육감은 내년부터 서울에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맞벌이 부부인 정모(40·경기도 용인시)씨는 “예전엔 아침에 함께 밥을 먹다가 지금은 차려 놓고 나가야 해 아이가 식은밥을 먹는다”고 호소했다. 시행한 곳에서 찬반 논란이 이는데도 시범운영조차 없이 덥석 따라 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시교육청 관계자는 “조 교육감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진보진영이 하자고 하니 따르는 정책이 많다”며 “자사고 폐지가 열세에 놓이자 유리한 전선이라고 판단된 9시 등교를 시행하라고 진보인사들이 조 교육감에게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조 교육감 개인적으론 진보·보수의견을 수렴할 의지가 있는데도 선거 때 밀어준 진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외부에서 진보인사들과 회의하고 온 뒤 추진하자고 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9시 등교나 유치원 수업시간 단축도 교육청 내부에선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조 교육감의 ‘선거 보은(報恩)’은 인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8월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주도한 평가단·지표개발단 포함 인사 5명 중 4명이 진보 성향이었다. 공약 추진을 위해 지난 9월 발족한 ‘혁신미래교육추진단’ 소속 교사 70명 중 56명이 전교조 출신이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조 교육감은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대해 잘 모른다”며 “진보진영에서 추천되고 합의한 인사라고 하니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내년에 혁신학교를 100곳으로 늘리기로 하고 55곳을 추가 지정하려 했으나 최근 공모에서 미달됐다. 이례적으로 전교조가 “숫자만 늘려선 안 된다”는 입장을 냈다. 교육청 관계자는 “전교조는 혁신학교 수가 많으면 학교를 장악하기 어렵다고 본다”며 “전교조가 반대 입장을 밝혀 조 교육감이 여건이 안 되는 혁신학교를 털고 가기가 수월해졌다”고 했다.

 전교조 관계자는 “자사고가 일반고 슬럼화의 원인이라면 갈 길을 가야 하는데 조 교육감이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하려 했다”며 “영향을 미치려는 게 아니라 우리는 소신을 지키라고 조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지자체장은 정당이 선거를 치르지만 정당 공천을 안 받는 교육감은 비공식 선거조직이 동원된다”며 “당선돼도 도와준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감 본인도 재선을 바라기 때문에 뒷받침해 줄 진영을 무시하기 어려워진다”며 “교육감 직선제를 유지할지 전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탁·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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