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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천재로 키우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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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있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한편으론 매료됐으나, 한편으론 질투심으로 살의를 느끼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진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스승이기도 했던 살리에리 역시 당대를 풍미했던 대단히 재능 있는 작곡가였다. 생존 당시에는 오히려 모차르트보다 훨씬 더 유명했지만, 우리는 지금 모차르트를 더 기억한다. 두 번 설명이 필요 없는 모차르트의 천재성 때문이다.

▶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

"2등은 아무리 뛰어나도 1등에 묻힌다"는 이 야박한 공식은 기업에도 적용된다. 기업 성과와 사람 능력의 함수는 대체로 정직하다. 일류 기술은 대개 일류 인재들에게서 나오는 이치와 같다.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은 해묵은 슬로건 같지만, 요즘 필자의 머리를 지배하는 키워드다. 이제는 근면성보다 두뇌 싸움이다. 한두 명의 천재가 획기적 신기술 하나를 개발하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으며, 수만 명에게 일자리도 제공한다. 1년 중 150일이 넘는 필자의 해외 출장에 우수인력 인터뷰 일정이 예외 없이 포함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게 확보한 인재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력화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진지한 고민은 의외로 부족해 보인다. 무릇, '용인(用人)의 완성'이란 발굴된 인재를 통한 성과의 가시화인데도 말이다. '핵심인재의 착시현상'이다.

안타깝지만, 필자의 경험치로는 우수인력을 뽑아 이들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적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식의 집단 따돌림, 성과가 빨리 나오기만을 재촉하는 조급증, 능력 발휘의 환경을 조성해 주지 않는 무성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조직 문화 등…. 인재를 뽑아 놓고 활용도 못하고 내보내는 건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얼마 전,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인 하버드 경영대학원 측이 삼성의 반도체 성공 사례를 1학년 필수 케이스 스터디 과목으로 채택, 필자에게 특강을 요청한 바 있다. 필자는 1000여 명을 수용하는 대형 강의실이 꽉 찬 데 놀랐고,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의 특강 당시보다 훨씬 더 많이 참석했다는 데 또 한번 놀랐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생이라면 최소한 준천재들이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세계적 유명인사도 아닌 필자의 특강을 서서라도 들으려 하는가? 그들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 때문이다. 하버드 학생들에게는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

우리는 어떤가? 일부 주장이긴 하지만, 서울대가 '학벌주의'를 촉발하였고, 욕심스럽게 인재를 독점하고 있으니 없애자고까지 한다. 하버드와 같이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세계 초일류 브랜드의 엘리트 교육기관'이 절실한 마당에, 그나마 국내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교육기관을 없애자는 것이다. 하버드가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있으니 없애자는 미국인을 보았는가? 학벌주의, 즉 엘리트주의 문제의 본질은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리현상인 '파벌주의'에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신동이었던 아이를 머리만 믿고 그냥 내버려 두면 성인이 되어 그저 평범한 둔재가 된다. 천재성을 가진 아이들에겐 독특한 개성을 최대한 살려주는 이른바 '맞춤형 엘리트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아직은 초보 단계이나, 우리도 이제 과학고와 같은 특수 목적 교육기관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으며, 필자의 회사도 몇몇 대학에 '반도체 맞춤형 특성학과'를 회사 재원으로 신설, 맞춤형 인재를 조기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어고.예술종합학교 등도 좋은 사례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천재의 유전자는 타고나지만, 천재로서의 가치는 후천적으로 길러진다. 아직은 설익은 천재들이 눈치 보지 않고 학문과 연구에 정진할 수 있는 환경을 국가와 기업이 만들어 주자. 우리가 가진 게 사람밖에 더 있는가? 잘난 사람은 더욱 잘날 수 있게 도와주어 다른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따라가게 함은 물론, 누구든 노력 여하에 따라 상위 5%가 될 수 있는 이른바 'Pro-active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 모난 돌에 무조건 정을 치기보다는 더욱 뾰족하고 단단하게 다듬어 주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