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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프레레로 계속 가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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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국민에게 환희와 자긍심을 줬던 한국 축구가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6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는 진출했지만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지도력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고 있다. 그 와중에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2무1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둠으로써 본프레레 감독의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 김대길 KBS스카이 축구 해설위원

비록 해외파가 빠졌다 할지라도 세 경기에서 단 1골밖에 넣지 못한 득점력 빈곤은 팬들에게 답답함을 안겨줬다. 또 우세한 플레이를 하면서도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큰 문제는 본프레레 감독의 전술 운용이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부임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선수들의 특징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따라서 안정된 포메이션과 전술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본프레레 감독은 동아시아대회 부진에 대해 해외파가 빠진 상태에서 국내 선수를 테스트하고 신인을 발굴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이번 대회에 출전한 중국.일본.북한이 공통적이었다. 일본도 해외파가 오지 않았고, 북한은 전원 23세 이하로 구성했다. 중국도 20세 이하 청소년대표 출신을 대거 엔트리에 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지닌 한국이 최하위를 했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국내 선수를 시험하려 했다면 확실하게 뛸 수 있는 기회를 줘서 해외파들로 하여금 자극을 느끼고 긴장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불과 10분 남짓 뛰게 해놓고 테스트니 평가니 하고 말할 수 없다.

본프레레가 거스 히딩크 감독과 다른 점은 확실한 장기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중간에 부진하더라도 확실한 목표와 짜인 과정이 있다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본프레레는 지금까지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해 왔고, 장기 계획을 묻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적이 없다.

이러한 내용은 경질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축구는 신체에서 가장 덜 민감한 발로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가변성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축구팬들의 불만과 걱정은 경기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여준 경기 내용이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로서는 월드컵 본선이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 교체라는 극약처방이 무척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론에 밀려 감독을 경질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대안이 없다"며 손 놓고 있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히딩크 감독이 다시 대표팀을 맡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히딩크는 지난달 피스컵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대한축구협회가 불러주지 않아서 다른 팀으로 간다"고 말하는 등 은근히 언론 플레이를 했다. 히딩크가 호주 대표팀을 맡았지만 독일 월드컵 본선에 가기 위해서는 남미 예선 5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호주는 플레이오프에서 이겨 월드컵 본선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감독을 교체하더라도 이 상태로는 안 된다. 히딩크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특히 조직력과 전술을 익힐 수 있는 소집훈련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프로구단들이 대승적으로 협조해줘야 하고, 축구협회도 정중하게 이해를 부탁해야 할 것이다.

한국 축구가 이런 어려움에 처한 가장 큰 원인제공자는 감독도 선수도 아닌 축구협회, 특히 감독을 선발한 기술위원회다. 협회는 그동안 대표팀에 문제가 생기면 감독을 희생양 삼아 '물타기'를 해 왔다. 이번만은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동반 책임을 져야 하고, 당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대길 KBS스카이 축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