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쏜 백인 경관 면죄부 … 시위대, 경찰차 불태우고 약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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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주 퍼거슨에서 흑인 소년을 사살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에 대해 24일(현지시간)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자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뉴욕에서 시위대들이 타임스스퀘어로 향하고 있다. [뉴욕·오클랜드 AP=뉴시스]
오클랜드 고속도로를 점거한 시위대. [뉴욕·오클랜드 AP=뉴시스]

흑인 10대 소년, 마이클 브라운 사망 사건으로 소요에 휩싸였던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가 또 다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됐다. 24일(현지시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브라운을 쏜 백인 경관 대런 윌슨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다. 로버트 맥컬로크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사는 판결 후 기자회견을 열고 “대배심은 윌슨 경관을 기소할만한 상당한 근거가 없다고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기소됐을 경우 윌슨 경관은 최소 과실치사, 최대 1급 살인 혐의가 적용될 수 있었다.

 브라운은 지난 8월 9일 윌슨 경관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윌슨은 12발을 브라운에게 쐈고, 마지막 총알은 그의 머리에 맞았다. 지역 경찰은 그가 경찰과의 몸싸움 끝에 총에 맞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브라운으로 보이는 흑인이 가게에서 담배를 훔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 영상을 공개하며 그가 절도 용의자인 듯 암시했다. 하지만 당시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였으며 경찰이 총격과 별개인 절도 사건을 들어 본질을 흐린 게 논란이 되며 반발을 불렀다.

 백인 9명, 흑인 3명으로 구성된 대배심단은 8월 말 심리를 시작했다. 목격자 60명을 소환해 증언을 듣고 증거를 면밀히 살폈다. 그 결과 총격이 정당방위였다는 윌슨 경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맥컬로크 검사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윌슨 경관은 “브라운이 절도용의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접근하자 그가 내 얼굴을 쳤다”며 “한 대 더 맞으면 치명적일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불기소 처분은 분노를 일으켰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퍼거슨시 경찰서 앞에 모여 발표를 기다리던 수백 명의 시민은 속보가 나온 순간 “그는 살인자다. 역겨운 살인자”라고 외치며 폭발했다. 브라운의 유족은 “우리 아이를 살해한 사람이 자기 행동의 결과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브라운의 엄마인 레슬리 맥스페든 역시 경찰서 앞 시위에 참석했다. 시내 상점이 약탈당했고 곳곳이 화염에 휩싸였다. 세인트루이스로 통하는 44번 고속도로도 점거됐다. 이곳은 최근 또 다른 흑인이 고속도로 순찰대에 총상을 입은 곳이다. CNN은 총성도 들렸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TV 회견을 통해 “우리는 법치 위에 세워진 국가다.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시위대와 경찰에 자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워싱턴의 백악관 앞에 군중이 모여들었고 뉴욕·시카고 등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CNN은 이번 처분이 인종과 공권력에 대한 논란을 재점화했다고 전했다. 인구 2만1000명의 소도시 퍼거슨에서 흑인 인구는 60%가 넘는다. 흑인이 다수지만 경찰·행정 등 이른바 ‘권력’은 백인이 잡고 있다. 인종적 편견과 권력이 결합해 브라운 사망사건을 낳았고, 대배심의 결정 역시 그 결과라는 것이다.

 대배심 처분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 통계분석 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이트닷컴(Fivethirtyeight.com)은 이날 16만2000건의 연방 사건 중 불기소는 단 11건뿐이라는 2010년 법무부 통계국 자료를 공개했다. 또 “검사는 햄샌드위치도 기소하도록 대배심을 설득할 수 있다”는 솔 워츨러 전 뉴욕고등법원 주심판사의 말도 전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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