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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진정한 '친구'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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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국의 옛말 하나. '지기(知己)를 만나면 천(千)잔의 술도 적다(酒逢知己千杯少)'.

▶ 진세근 아시아뉴스팀 차장

지금 지구촌이 꼭 이렇다. 너도나도 중국을 지기 삼아 술 한잔 따르기에 열심이다. 중국의 앞마당인 아시아는 그렇다 치자. 미국과 서구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워싱턴을 다녀온 한 칼럼니스트는 "미국에 가서 중국 공부만 실컷 하고 왔다"고 털어놨다. 세미나는 물론 출간되는 책까지 중국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보자. 지난해 1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이 나흘간 파리를 방문했다. 당시 프랑스의 환대는 참으로 극진했다. 우선 2003년 9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를 '중국 문화의 해'로 지정해 각종 공연과 전시 주제를 중국 일색으로 꾸몄다. 파리시는 샹젤리제 거리를 통째로 막고 춘절(春節.설) 행사를 벌이도록 배려했다.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은 춘절 때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조명을 바꿨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1998년 9월 취임한 이래 지난해 말까지 거의 매년 중국을 방문했다. 한국은 단 한번 찾았을 뿐이다. 브라질.인도 같은 대국에서부터 아프리카 짐바브웨 같은 소국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랑의 애절한 사연은 끝도 없다. 요즘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6자회담의 주역도 남북한이나 미국이 아닌 중국인 듯하다. 중국의 외면은 이처럼 화려하다.

그럼 중국의 속은 어떨까. 다시 중국의 옛말 하나. '뜻이 통하지 않으면 반 마디의 말도 많다(話不投機半句多)'. 중국 정부와 인민의 관계가 딱 이렇다. 현장을 보자.

'다이쉐(待雪)'.'눈(雪)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눈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감싸 안기 때문일까, '다이쉐'엔 '원한이나 억울함이 풀리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지금 중국 전역은 '다이쉐'로 덮여 있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억울한 사연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수도 베이징(北京)에는 '상방'(上訪.탄원)촌이 있다. 억울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찾아와 정부 관리와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1년이나 생활하고 있는 장(張)씨 할머니는'천위안다이쉐(沈寃待雪.억울한 사연을 풀어 달라)'라고 쓴 골판지를 목에 걸고 오늘도 골목길에 서 있다. 공안(公安.경찰)이 눈을 부라리면 집안으로 쫓겨 들어갔다가도 금세 골목길의 장승이 된다.

할머니의 가족은 3년 전 싼샤(三峽) 댐 부근의 고향 펑제(奉節)를 떠나 멀리 푸젠(福建)성으로 쫓겨갔다. 댐 건설을 위한 주민 소개다. 정부는 공장 취직과 ㎡당 9위안(약 1200원)의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천리 타향에 도착해 보니 부서진 오두막과 황량한 벌판이 전부였다. 취직할 공장은 아예 없었다. 땅값은 ㎡당 300위안(약 4만원)이나 했다. 그곳 방언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할머니의 아들은 다른 농부들과 함께 길을 막고 관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즉각 무경(武警)이 출동했다. 할머니 아들은 반혁명선동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하고 있다.

지식인도 서럽기는 마찬가지다. 인권 변호사인 리바이광(李柏光)은 지난해 12월 제대로 된 토지 보상을 요구하는 농민들을 변호하기 위해 푸저우(福州)로 내려갔다가 공항에서 체포됐다. 죄목은 불법집회 선동과 질서 교란이었다. 정부에게 빼앗긴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투쟁하는 투자가들을 돕기 위해 밤낮으로 뛰던 주주후(朱久虎) 변호사는 5월 26일 새벽 은신처에서 체포됐다. 중국의 속은 이처럼 우울하다.

요즘 중국 위협론이 힘을 얻고 있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확실히 무서운 존재다. 그러나 다수의 중국 인민이 이렇게 불행하다면 중국의 힘은 허전할 수밖에 없다. 언제 딴죽에 걸려 넘어질지 모른다.

두 나무의 가지가 만나 하나의 가지가 되는 것을 연리(連理)라고 한다. 아름다운 합일이다. 중국 정부와 인민이 연리되는 날은 언제일까. 그때에야 비로소 중국은 지구촌의 참된 '지기'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진세근 아시아뉴스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