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 북 대표 '평양 OK' 기다리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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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제4차 6자회담 9일째인 3일 취재진이 베이징 댜오위타이 앞에서 각국 대표들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비가 오는 날엔 결과가 안 좋았는데… 날씨가 걱정이다."

3일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을 나서던 미국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회담의 분수령이라던 이날 베이징의 아침은 장대비로 시작됐다. 정말 비 때문이었을까. 숨가쁜 하루였지만 고대했던 타결 소식은 없었다.

6개국이 본국의 훈령을 받은 뒤 잠정 합의안을 논의하려던 수석대표회의는 계속 연기됐다. 당초 중국은 나머지 5개국의 회신을 오후 3시(현지시간)까지 접수한 뒤 이 회의에서 담판을 지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흘러갔지만, 중국의 회의 소집 통보는 없었다. 물밑 접촉은 있었다. 중.미, 북.중 등 양자 접촉이 이어졌다. 오전 한때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북한 김계관 수석대표는 오전 11시쯤 회담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를 빠져나갔다. 그리곤 저녁 늦게야 회담장에 복귀했다. 김 대표의 복귀 소식에 미국 대표 힐도 회담장을 향했다. 중국을 통한 북.미 간접접촉에 관계국들이 숨을 죽였지만 벌어진 틈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회담 타결의 8부 능선까지 왔다던 회담장 주변의 낙관론은 "다시 지켜보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키를 쥔 건 북한이었다. 오전부터 베이징의 모든 시선은 북한 측 대표단의 숙소인 북한대사관으로 쏠렸다. 힐 대표는 이날 오전"워싱턴은 잠정 합의문에 만족하며 이것이 최종안이 돼야 한다"고 했다.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엔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며 협상 전망에 대해선 신중했지만 얼굴엔 기대감이 드러났다. "북한은 교차로의 끝에 와 있으며, 그들 자신을 위해 결심을 할 때"라며 북한 측의 결단을 촉구했다. "회담이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린 휴회 가능성을 논하지 않았고 합의하러 왔다"는 말도 했다.

일본도 거들었다. 힐 옆에 서 있던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일본 수석대표도 "타결 여부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도 "합의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담 초반 북한 측이 극도로 꺼리는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해 한.미.중.러 4개국의 신경을 건드렸던 일본 정부가 OK 사인을 공개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합의문엔 '북.일 간 관계 정상화와 양자적인 문제들은 양자협의로 푼다'는 취지의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모호한 표현이지만 납치자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데 만족하는 듯했다.

전날 합의문에 만족을 표시했던 송민순 한국 수석대표는 "장대 높이뛰기에서 바(Bar)를 상당히 높이 걸어둔 상태"라고 표현했다. "합의에 도달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된다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는 잠정 합의문에 대해 "각국이 전부 승자가 된다. 이 협상에서 패자는 있을 수 없다"며 "승자가 된다는 입장에서 긍정적인 반응들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상의 한 쪽 고리를 풀어야 할 북한 측 반응은 일단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북.미 관계 정상화의 구체적 수순이 잠정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평화적 핵 이용이 명시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탓' 등 설(說)만 분분했다. 평양의 최종 결심이 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라도 더 얻으려는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인지, 아니면 판을 깨려는 것인지 지켜봐야 할 국면이 된 것이다.

베이징=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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