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대책에 밀려 질적향상은 뒷전-고교평준화보완시책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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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가 10일 내놓은 고교평준화시책보완계획은 9년간 실행해본 결과 평준화시책은 최선이었다는 전제위에 서있다. 그래서 문교부는 제도의 근간을 흐트리지않는 범위 안에서 일관성있게 계속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사실 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 실시된 연차적으로 20개 도시에 확대되면서 소위 명문고교를 모두 없애「입시지옥」에서 중학생을 해방시켰다. 그 이후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덜게 된 중학생의 키가 평균 4.2cm나 커졌다고 밝히고있다.>
중학졸업자의 고교수용률이 68%에서 85%로 늘었다든지, 고교입학을 위한 학부모의 과외부담이 없어졌다는 등의 성과도 지적되고있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경기고교가 대표해온 명문이 사라지면서 K-S (경기-서울대) 라는 일류병의 사회풍조가 크게 완화되고 평준화된 보편교육이 어느 정도 정착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81년 이후 대학교육에까지 연장되려 하고있다.
그러나 고급두뇌도 양성해야 하는 대학교육이나 일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후기 중등교육을 의무교육이나 마찬가지로 평준화 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에 문교부는 모두가 동의하는 확답을 내놓지는 못하고있다. 특히 고교교육의 경우 평준화 이후 양적으로 급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에서 보다 중요시돼야 할 질 관리는 소홀했고, 이번의 보완계획에도 충분히 반영되고있지 않은 것 같다.
원칙적으로 평준화는 모든 학교가 일류교가 돼 어느 특정학교를 겨냥한 입시지옥에서 학생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상향평준화를 지향해야 하는데도 모델학교운영 등과 같은 구상은 없다.
지금까지 뒤떨어진 학교를 명문교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재정능력이 없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와 정반대의 하향평준화가 되고있다는 비판의 여지는 그대로 남아있다. 농·공고와 내년에 수원에 신설될 과학고교에 추천입학제를 도입하기는 했으나 인문고교의 선발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대지않은 것은 보완이 미봉에 그쳤다는 인상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력차가 무시된 채 추첨 배정된 입학생이 형성하는 이질집단은 학습효과를 크게 떨어뜨려 전체적으로 학력이 저하되고, 학습에서 소외된 학생은 불량서클 등을 형성하거나 이탈행위를 하는 등 생활지도상의 문제도 늘어나고있다는 보고가 많다. 최근 잇단 고교생의 폭력사태를 이같은 각도에서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이의 보완을 위해 부분적으로라도 선 지원-후 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문교부는 평준화가 흔들린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고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지리상의 거리만으로 결정되는 학교에 대해 애교심을 갖거나 비슷한 성취의욕을 가진 동료집단이 형성할 수 있는 선의의 경쟁분위기는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능력이나 적성에 따라 입학 후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없다. 특히 81학년도 이후 내신성적의 대학입시반영강화로 인문계고교의 직업과정은 유명무실해졌는데도 이에 대한 보완계획은 언급되지 않고있다. 고교에 일단 입학하면 진로는 확정되는 것으로 되고, 교과별·능력별 이동수업이나 학습부진학생 보충수업 정도가 가능할 뿐이다.
더욱이 연합선발고사에 의한 입시제도에서도 최근 대학입학학력고사에 의한 부작용으로 지적되고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객관식시험의 해독이 문제점으로 지적돼오고 있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어서 객관성을 앞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계속되는 주관배제의 연합선발고사는 재검토돼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나 개선의사는 전혀 이번 계획에서 밝히지 않았다.
이밖에 문교부가 시책실시 10년만에 내놓은 보완계획은 그동안 평준화의 희생물이 돼온 사학에 대한 특별배려가 없이 앞으로 사학설립을 권장하겠다는 계획만 밝히고있다. 사학은 전체고교생의 60% 이상을 교육시키는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평준화시책으로 국가경영의 국·공립과 같은 공납금을 받아야 하고, 이로 인해 전국 7백 15개 사립고교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학생들에게 부실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 사학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그동안 사학 관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사립은 수익자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사학만이라도 선 지원 후 배정으로 건학정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해왔다.
그러나 종교가 다른 학교에 배정받지 않을 장치마저 유보됐다.
고교평준화는 내년으로 10년을 맞는다. 개인이 무시되고 질적으로 하향되는 평준화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을 위한 평준화, 나아가서는 질적으로 모든 고교가 향상될 수 있는 평준화를 위해 기존제도를 과감히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권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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