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60. 다시 태어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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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2003년 9월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문화훈장을 받은 필자가 아내, 가수 남진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아내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한 내게 악극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백조악극단'이 공연했던 작품 제목을 그대로 따온 현대판 악극 '눈물의 여왕'이었다. 극중 인물에는 젊은 배삼룡도 있었다. 나는 무대장치를 맡은 일꾼 역이었다. 젊은 배삼룡 역은 후배 연기자가 맡았다.

TV로 연기 무대를 옮긴 내게 유랑극단은 영원한 향수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잊고 지냈던 악극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무대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감회는 남달랐다. '눈물의 여왕' 공연이 끝나자 또 다른 악극 제작진으로부터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서울뮤지컬컴퍼니의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였다. 이번에는 비중이 큰 역이었다.

1970년대 초반 서울 국도극장 무대에서 우연히 만들어냈던 '개다리춤'을 신나게 췄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리를 양쪽으로 마구 흔들어대는 개다리춤. 전성기 때는 무대에서 폼만 잡아도 객석이 뒤집어졌다.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 속편인 '이수일과 심순애'에선 구봉서씨와 함께 출연했다. 같이 악극 무대에 오른 건 40여 년 만이었다.

올 2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의 전원주택을 정리했다. 앞마당에 고추.배추 등 채소를 기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단독주택보다 손길이 훨씬 덜 가는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아내와 결정했다. 지금은 경기도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연예활동 60년 동안 각종 상을 많이 받았다. 그 가운데 잊지 못할 상패가 두 개 있다. 하나는 2001년 'MBC 명예의전당 코미디언 부문'에 오른 것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를 통해 코미디를 시작했고, TBC와 납치극 소동을 벌인 후 줄곧 MBC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내겐 더욱 뜻깊은 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2003년 9월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받은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문화훈장 대상'이다.

올해로 내 나이 여든이다. 어머니의 염낭을 털어 배우의 길로 접어든 지 꼭 60년이 되는 해다. '코미디 황제'라는 과분한 호칭까지 얻으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유랑극단의 꽁무니를 쫓아 트럭 짐칸에 올라탔을 때의 심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땐 배우 생활이 어떤 건지, 배우의 길이 어떤 건지를 전혀 몰랐다. 그저 무대가 좋아 모든 걸 던지고 걸었을 뿐이었다. 이제 '그게 배삼룡의 힘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오직 무대만 바라보는 것, 그게 바로 열정이었고 사랑이었다.

간혹 사람들이 묻는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겠느냐. 뒤집어 말해 '당신의 지난 삶에 만족하느냐'란 얘기같다. 내 대답은 늘 똑같다. '이리저리 시행착오는 겪겠지만 결국 무대에 설 것이다'. 무대는 내 삶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배삼룡 코미디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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