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내릴 뻔했던 기아산업일 자동차통합조치 백지화로 기사회생했다.
『통합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상공부의 결단은 현실을 직시한 판단이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경영정상화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기아산업 김선홍 사장(50)의 이야기다. 김 사장은 전문경영인으로 1년 5개월의 통합 시련기를 겪은 장본인. 김 사장은 기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벗어나 고 김철호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거듭 다행스러워 했다.
자전거에서 시작하여 삼륜차·자동차 등으로 평생을 바퀴사업으로 일관한 기아산업의 창업주 고 김철호 회장은 72년 임종석상에서 당시 상무이던 김선홍 사장의 손을 붙잡고『기아의 이름을 지켜주기 바라오. 자동차를 월 2만대 생산할 수 있도록 힘써주시오.』라고 간곡한 유언을 남겼다 한다. 김 사장은 서울대 공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58년 기아공채 1기로 입사, 김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
김 사장은『이때 내 몸은 기아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고 결심하게 됐다는 것.
운명하는 순간까지 자동차 공업을 생각하고「명령」하는데 감복했다는 것이다. 고 김 회장이「자동차 생산 2만대」운운한 것은 채산성 곡선이론을 따른 것이라고 풀이한다.
「자동차공업론」을 쓴 영국의「실버스턴」은 단위공장이 월 2만대를 생산하면 국제규모 공장이돼 채산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 운명 당시 기아의 월 평균 생산실적은 1천 5백대 수준이었다.
비온 뒤 망이 굳어진다』는 격언대로 지난 시련을 전화위복의 밑거름으로 삼으면 기아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자신이 있다』고 강조한다. 어려운 고비 때면 사장이 사원들과 함께 남한산성 고 김 회장의 묘소를 찾아 마음을 달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빚더미 속 기아」라는 세론에 대해 김 사장도 지난해 2백 66억 원의 적자를 냈으나 올해에는 봉고트럭 등 신제품이 히트하여 혹자전망이라고 밝힌다.
목표 제1은 흑자경영, 제2는 부채축소에 힘쓰기로 했다.
중화학 투자문제에 이르자『기업에는 각 기업만이 알아야할 비밀과 특성이 있는데 물리적으로 통폐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는 지론이다.
자본과 경영의 분리문제에 관해서는 뼈저리게 체험한 경험담을 예로 들면서 금융기관이나 관계당국도「오너」가 안 나서면 기업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