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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김치' '참이슬' 이름 지은 그녀, 나전칠기에 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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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잘 보세요. 아래로 흘러내리는 등나무 꽃잎과 이파리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죠? 모란 꽃잎도 한 잎 한 잎 살아 숨 쉬는 것 같고요. ”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듯했다. 최근 서울 남산 자락에 아담한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을 연 브랜드 디자이너 손혜원(60·크로스포인트) 대표가 나전 명인 오왕택씨의 나전칠 함 ‘사계’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이번엔 그가 옆 전시실에 놓인 붉은 매화무늬장 앞에 섰다. 한국화가 허달재의 매화 그림을 주제로 칠장 김상수(강원도 무형문화재)씨가 옻칠을 한 작품이다. 개관 기념으로 오왕택·김상수 2인전과 더불어 ‘나전칠기 근현대작가 33인’전을 열고 있는 그는 “앞으로 한국 전통 공예 분야의 숨어있는 ‘고수’들을 소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참이슬’ ‘처음처럼’ ‘트롬’ ‘힐스테이트’ ‘종갓집 김치’ 등 숱한 브랜드 이름을 지은 주인공이다. 브랜드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그런 그가 지난 8년간 사재를 털어 수집해온 나전칠기 컬렉션 3백 점으로 박물관을 열었다.

 - 시장의 ‘핫한’ 트렌드를 읽는 일과 나전칠기, 언뜻 연결되지 않는다.

 “2006년 9월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나전칠기-천년을 이어온 빛’ 전시를 본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평소 잘 모르던 분야인데 나전칠기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놀랐고, 전시작 중 좋은 작품 대다수가 일본에서 대여해온 것이란 사실을 알고 또 놀랐다. 당시 ‘나전칠기의 메카’로 알려진 통영시 로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현대의 나전칠기’가 궁금해 장인들의 공방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며 매료됐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명품이 거기에 있었다.”

 - 컬렉션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박물관을 열지는 않는다.

  “물론이다. 지방의 장인들을 하나, 둘 만나보니 ‘무림의 고수’들이 적잖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를 감동시킨 ‘아티스트’들의 경이로운 솜씨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궁극적으로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등 세계 저명 박물관에 한국 전통 공예의 가치를 알릴 계획이다.”

  2010년 한스타일 박람회, 2013·2014년 밀라노에서 열린 한국 전통공예전에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그는 한산모시·한지·도자 등 공예 분야에도 관심을 넓혔다.

 - 밀라노 전시에서 ‘전통 공예가 세계에서 통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했는데.

 “전시를 가기 전부터 확신했다는 더 정확하다(웃음). 최고, 즉 프리미엄은 프리미엄끼리 서로 통한다. 가짜에는 영혼이 없다. 진짜에는 그것을 손으로 만든 사람의 고민과 노력이 그대로 배어 있다. 그 혼을 리얼하게 느끼는 순간 우리는 감동하는 것이다. 밀라노에서 외국 관람객이 우리 공예품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며 ‘최고는 최고끼리 통한다’는 믿음을 더욱 갖게 됐다.”

 - 1970년대 황금기를 누리던 나전칠기 시장이 쇠락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옻칠이 아니라 화학칠을 한 제품들이 판을 치고 하향편준화 됐었다. 시장은 무섭다. 나전칠기가 쇠락한 것은 바로 혼이 없는 물건이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교감하지 못하는 물건은 쉽게 버린다.”

글=이은주 기자 julee@joongna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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