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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실명예금제도 어떻게 운용되고 있나 (3)영국|각국의 은행이용 관행을 알아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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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행의 역사가 2백년이 넘는 영국에서는 은행과 시민과의 거리가 담뱃가게만큼이나 가깝다. 영국의 일반은행의지점수는 전국적으로 1만4천3백개 인데 여기에 소액 민간저축을 모아 토지와 주택구입에 필요한 장기융자를 제공하는 주택협회(빌딩 소키티)지점 4천5백95개를 합하면 무려 1만8천8백95개의 일반금융창구가 열려있는 셈이다. 이는 성인1천9백58명에 하나씩 은행지점이 있는 꼴이다. 이들 은행들은 일체 정부의 간섭 없이 완벽한 자유시장원리에 따라 경쟁을 하기 때문에 고객에 대한 봉사가 다양하고 적극적이다.
한국시중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이외의 특이한 것을 예로 들면 고객에 대한 개별적 금융자문역할을 들 수 있다.
전화 한통화로 고객은 언제나 지점장과 만나 개인적 금전관리에 관한 상의를 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고객은 집을 구입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차를 사는데 따르는 융자의 방법 또는 예금투자의 유리한 방법을 상의하고 은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고교를 갓 졸업한 청년들에게 일자리 구하는 방법도 자문해주고 취직을 위한 구두시험 합격요령을 설명하는 책자까지 돌린다. 은행측으로선 처음 직장을 갖는 청년을 일단 고객으로 유치하면 평생고객으로 확보되리라는 생각에서 이런 데까지 신경을 쓰는 것이다.
서민이 은행에서 돈을 비는 과정도 지극히 간단하다.
대개의 은행들은 최고 5천 파운드(약7백 만원)까지 무담보로 융자해준다.
상환기간은 1년 내지 3년.
융자신청서는 한 장뿐이며 보증인도 필 않다. 다만 참고인 주소·성명과 직장주소 및 다른 금융기관과의 거래실적에 관한 정보를 기재하도록 되어있다.
은행은 이 신청서를 가지고 신청인의 신용도와 판제능력 등을 조사해서 융자여부를 결정한다. 보증인이 없기 때문에 대출 받은 사람이 빈돈 을 모두 갚기 전에 사망할 경우에도 가족에게 남은 채무를 넘기지 않고 소멸시켜버리는 규정도 있다.
판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은행에서 돈을 빌기는 한국이나 영국이나 다같이 어렵지만 능력이 있으면 영국에서는 서민층도 최대한의 액수를 비굴감을 느끼지 않고 간단하게 빌 수 있는 것이다.
저축의 경우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있는 영국에서는 그 필요가 한국에서만큼 절박하지 않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병으로 눕게될 때 무료로 치료를 해줄 뿐 아니라 환자수당까지 정부가 지급하기 때문에 건강문제로 저축할 필요가 없다.
또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대학은 시험에만 합격하면 지방자치기관에서 학비를 대어 주기 때문에 자녀교육비를 위해 저축할 필요도 없다.
일반시민들이 저축의 목적으로 삼고있는 것은 첫째가 주택구입이고 둘째가 휴가, 셋째가 실업 또는 노년기에 대비하는 것이다. 셋째의 경우도 정부가 실업수당을 주고 은퇴 후는 퇴직연금을 주기 때문에 풍족하지는 않지만 굶을 걱정은 없다.
그렇다면 영국국민들이 저축을 게을리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영국인의 저축성향을 이야기할 때 이 정도의 기본생활상의 여유를 감안하는 선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다.
영국인의 저축성향은 70년대이래 크게 높아졌다.58∼62년 사이 개인가용소득의 6·5%에 지나지 않던 저축률은 73∼77년 사이12·5%로 거의 배가됐고 79년에는 15%를 넘어섰다.
경제전망이 계속 어두워지고 보수당정권이 집권한 후 사회보장제도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서민들이 앞날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예금이 실명으로만 가능하다. 은행 이자가 종합소득세 대상이 되기 때문에 무기명은 불법이다.
은행이자를 면세하는 예외의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택협회예금인데 예금주의 종합소득이 연봉1만 파운드(약1천3백 만원)이하인 경우에 한해 이자에 대한 세금을 주택협회가 대신 지불해준다.
다른 하나는 프리미엄 채권인데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한 복권부 채권이다. 이자가 없는 대신1주일에 한번씩 실시하는 추첨에서 최고 10만 파운드(약 1억3천 만원),최하 5파운드 (약 6천5백원)짜리 당첨 권이 수백 개 나온다. 이것은 이자를 몰아 소수당첩자에게 푸는 흥미로운 저축방법인데 당첨 액에 대한세금이 면제된다.
그러나 개인이 이 채권을 구입할 수 있는 한도를 3천 파운드로 한정하고있다.
저축성예금을 은행보다 더 많이 거두어들이고 있는 주택협회는 우리나라주택은행과 비슷한데 비영리기관이다.
이 기관은 영국의 전체 주택구입의90%, 신축주택의 70%에 융자 하고 있는 실적을 갖고있다.
이 기관은 처음 집을 사는 사람에게 연봉의 2·5∼3배까지, 그리고 집 값의 90%까지 융자해주고 상환기간은 25년 또는 은퇴 시까지로 돼있다.
이경우도 구입하는 주택을 담보로 제3의 보험회사가 채권보증을 서기 때문에 보증인이 필요 없고 직장의 봉급액수 등 지불능력의 확인만으로 융자를 얻게 된다.
따라서 집 값의10분의1의 현금과 튼튼한 직장만 있으면 자기 집을 갖는 것은 쉽다.
영국에도 재무 당국의 눈을 피해 행해지는 소위 흑색경제가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총액은 크지만 개별적인 규모는 사소하다.
예컨대 자동차수리를 밤에 집에 찾아가서 살짝 해주고 수리비를 현금으로 받아 종합소득신고에서 제의하는 따위다.
사채시장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정부 규재없이 금리가 자유로운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사채의 필요가 없고 또 세무당국의 눈을 피해 다니는 블랙 머니(검은 돈) 가 소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은행예금 외에 보험·투자신탁·상품시장·해운시장·골동품시장등 제2, 제3금융권이 깊고 넓게 발달해 있기 때문에 중산층이상의 계층이 갖고있는 부동자산이 흘러 들어갈 채널이 다양한 것도 사채시장이 형성될 수 없는 한가지 여건일 것 같다.

<런던=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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