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동거는 하는데 동지가 잘 안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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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직원들은 차별대우만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반면 상당수 신한은행 직원은 조흥을 합병하는 만큼 통합 주체는 신한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한지주의 한 고위 간부는 최근 통합작업의 어려움을 이같이 실토했다. 그는 "멀고도 험한 길을 가는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내년 중 통합을 앞두고 있는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은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두 은행 직원들을 한 가족으로 섞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만든 사이버게임의 참가 요령 중엔 "팀은 반드시 신한과 조흥 직원이 섞여야 한다. 같은 은행 출신으로만 팀을 짜면 실격"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을 정도다.

두 은행 직원들을 같은 조직문화에 융화시키는 이 같은 '화학적 통합'은 이미 2년 전부터 추진돼 왔다. 그러나 통합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파워게임의 양상도 나타난다. 이런 마찰은 짝을 지었던 대부분의 국내 은행에서 벌어지고 있다. 상당수 국내 은행이 길고도 험한 '내부 통합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힘겨운 신한지주의 통합 노력=신한지주의 화학적 통합 노력은 조흥은행을 인수한 직후인 2003년 10월 시작됐다. 경영 효율이 높은 은행이 부실한 은행을 사들이는 M&A의 속성상 인력 감축을 둘러싼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신한지주는 스포츠와 동호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신한과 조흥 직원들의 한 식구 만들기에 전력을 다해왔다. 두 은행 직원들은 2년간 서울.경주.춘천 마라톤 단골손님이 됐고, 올해는 900명이 백두산을 오르는 행사도 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되레 본격화할 조짐이다. 조흥은행 노조는 지난 9일 서울 등촌동 88체육관에 모여 '어울림 한마당'행사를 열고 '합병 검토 특별위원회'의 설치를 요구했다. 노조 측은 ▶합병은행의 존속법인.본점.명칭 등을 모두 조흥은행으로 사용할 것 ▶합병은행의 행장은 5년 이상 재직한 조흥은행 출신으로 할 것 ▶향후 3년간 영업점 간 교차 발령 중단 ▶기획.인사.영업.IT 부문 등 주요 부서장은 두 은행 동수로 임명할 것 등을 요구했다.

◆ 국민.우리.하나은행도 후유증=국민은행도 합병 후 조직 갈등 때문에 인사를 할 때 두 은행 출신을 반드시 안배해야 했으며 한쪽이 손해를 봤다 싶으면 다른 쪽 노조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내분이 빈발했다. 이 때문에 강정원 행장은 취임 직후 "같은 은행 출신끼리는 함께 밥도 먹지 말라"고 지시했다.

옛 서울은행을 경영(2001년)했던 그로선 서울은행 부실화의 원인을 "지리멸렬한 집안싸움"으로 규정할 만큼 합병은행 내부의 주도권 다툼을 경계했던 것이다.

1999년 1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한 우리은행(옛 한빛은행)도 출범 초기 각 부서의 인력이 기계적으로 두 은행에서 절반씩 채워졌다. 부장이 한일 출신이면 바로 밑에 있는 차장은 상업 출신이 맡는 식이었다. 당시 김진만 은행장이 "출신은행별 모임을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지금도 '잔재'가 남아 있다.

2002년 말 서울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도 지난해 8월 '하나.서울노조 통추위'를 출범시켰으나 여전히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옛 한미노조 내부 고발도

◆ 외국계도 주도권 다툼=지난달 한국씨티은행이 옛 한미은행 출신 부행장 두 명을 재계약하지 않자 한미은행 노조 측은 "외국계 은행 지점에 불과했던 씨티은행 출신이 전국 규모의 은행 출신을 제치고 임원 자리를 독차지하려 드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또 한미은행 노조는 19일 씨티은행이 시중금리가 내리면 따라 내리도록 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내리지 않는 수법으로 불법 이득을 취했다며 회사 측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동호.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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