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석유화학산업 계속 불 밝히려면 … 도레이+유니클로 협업에 답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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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화학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건강한 ‘사업 체질’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내복이 화학산업의 구원투수가 됐다. 유니클로의 히트텍 이야기다.

 6일 서울 여의도 IFC몰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 원래대로라면 1만2900원을 받아야 하는 반팔 히트텍 제품을 이날까지 9900원에 판매한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매장엔 히트텍을 보러 온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매장 점원은 “겨울이 찾아온 데다 할인 행사를 더해 평소보다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히트텍은 유니클로가 12년째 내놓고 있는 장수 효자 상품. ‘발열내의’의 열풍을 몰고온 내복이다. 히트텍이 인기를 거듭할 수록, 함박웃음을 짓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일본의 화학업체인 도레이다. 도레이는 히트텍의 선전에 힘입어 섬유사업 영업이익률(2013년 기준) 7%를 달성했다. 글로벌 화학업체들의 평균(5%)를 크게 웃도는 ‘경이로운’ 성과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도레이의 선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한국 화학회사들의 경영진이 불황의 원인을 더이상 ‘경기’나 ‘중국’의 탓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되는 좋은 사례”라고 말이다. 임 연구원의 분석을 통해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한국 화학산업의 진짜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올 3분기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성적은 부진하다.GS는 GS칼텍스 정유사업 적자(1646억원) 영향으로 3분기 매출 2조7257억원에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90% 빠진 240억원을 기록했다. GS에너지 역시 741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LG화학은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3.4%가 줄어든 5조6639억원을 올렸지만 영업이익(3575억원)은 30%나 감소하며 실적이 주저앉았다.SK이노베이션 역시 석유사업 부진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48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4%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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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한국화학회사의 부진은 중국 때문이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중국’을 꼽는다. 일견 맞고, 일견 틀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먼저 중국의 수요 침체 때문이라는 이야기부터 설명하면 이렇다. 중국은 2000년대 부터 세계 화학산업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중국 수요=세계 수요’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중국이 시장이 미치는 영향은 실제로 상당했다. 2003년~2007년 사이 중국의 수요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달했다. 2008~2012년 사이엔 59%로 급증했다. 2009년 금융위기로 수요가 10% 감소했을 때에도 중국만은 시장이 12% 성장하면서 존재감을 높였다. 중국의 수요가 2011년 이후 빠르게 한자리 수로 줄면서 기업들 사이에선 “수요가 실종됐다”는 말이 회자됐다. 하지만 임 연구원은 중국의 화학제품의 수요 증가율은 2012년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중국’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분석했다.

 ②세계 경기 침체로 어렵다?

 기업들이 꼽는 실적악화의 원인은 글로벌 경기침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나무’가 아니라 ‘숲’의 시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원인이라면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매출기준 세계 화학기업 50개의 경영성과는 이런 우리 화학 기업들의 해명을 완전히 뒤집는다. 뼈아픈 이야기기도 하다. 글로벌 50대 화학기업들은 지난 21년간 평균 영업이익률 9.3%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8%)을 저점으로 2011년엔 12%대의 놀라운 성적을 냈다. 화학업체들의 실적이 하락하기 시작한 2012년(10%)과 2013년(10%)에도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반면 우리 화학기업 21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글로벌 선두 기업들의 절반에도 미치질 못했다.

 ③문제는 ‘체질’이다

 지표상으론 한국 화학산업은 문제가 없다. 지난해 수출 612억 달러, 수입 390억 달러로 222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 하지만 ‘질’을 보면 이야기는 정반대로 흘러간다.화학사업은 크게 석유화학(46%)과 고부가가치·신소재 화학(45%) 무기화학(9%)으로 나뉜다. 이 중 우리나라 화학기업들은 범용 제품에 해당하는 ‘석유화학’분야에 몰려있다. 지난해 석유화학에선 31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고부가가치화학산업인 정밀화학 분야에선 92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 특히 도료·잉크·접착제, 디스플레이 재료처럼 평균 수입단가가 t당 1만9000달러에 달하는 초고가 화학제품 분야에선 20억 달러(전체 수입의 12%)를 수입했다. 국가별 경쟁력 비교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전공’분야인 석유화학 분야에서 중국(무역특화지수 0.87)을 제외하곤 일본(-0.58) 미국(-0.22) 독일(-0.4)에 모두 뒤졌다. 정밀화학 사업에선 중국, 일본, 미국, 독일에 모두 경쟁력 추월을 당했다. 화학기업의 위기원인이 ‘내부’에 있었다는 것이다.

 ④유니클로 업은 도레이의 교훈

 1926년 섬유회사로 시작한 도레이의 직원은 7123명이다. 이 직원들이 한해 벌어들이는 매출은 지난해 기준 1조8380억엔(약17조4220억원)에 달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향산업’이라 불리는 섬유사업에서만 2560억엔을 벌어들였다. 놀라운 것은 이 사업의 영업이익률이 7%에 달한다는 것이다. 높은 영업이익률의 배경엔 ‘협업’이 있다. 도레이는 2000년 패스트 패션 회사인 유니클로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다. 회사내에 글로벌 오퍼레이션 추진실을 만들고 유니클로가 요구하는 소재 개발에 나섰다. 2003년 내놓은 발열내의 ‘히트텍’이 대표작이다. 발열성과 보온성이 높은 이 소재 개발협업은 기모소재로 만든 재킷인 ‘플리스’의 대성공으로도 이어졌다. 섬유사업 뿐만 아니라 신(新)사업 분야인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에서도 도레이는 ‘협업’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보잉과 에어버스를 ‘파트너’로 삼은 데 이어 2008년부터 ‘오토모티브 센터’라는 자동차 소재 솔루션 센터를 만들었다. 임 연구원은 “더이상 과거처럼 ‘버티기’를 하면 시장이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경기 탓을 하기 전에 제로 베이스에서 사업 체질을 강화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변화와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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