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기폭 실험 급증 … “핵무기 소형화 막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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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안북도 영변 핵단지에 새로 만든 우라늄 농축공장(빨간 선). 2014년 7월의 모습이다. 정부 당국자는 “ 공장에서 원심분리기를 가동할 때 발생하는 열이 감지됐다”고 말했다. [구글 어스 캡처]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일 “(북한의 핵무기 제조 능력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유승민(대구 동갑)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해 공격할 수 있을 만큼 실체적인 위협이 되고 있느냐”고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한 장관은 지난달 27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선 “북한이 핵 보유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 때문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연기했다”고 강조했다.

 국방장관의 이런 발언들은 그동안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과 온도 차가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핵물질을 소형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특히 한 장관이 사용한 “현실화”라는 표현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에 근접했다는 의미다.

 한·미 정보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 제조기술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싱크탱크 인사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해야 하는 단계”라며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무기 보유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통상 핵실험을 한 뒤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이면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북한은 8년 전인 2006년 1차 핵실험을 한 만큼 기술적으론 소형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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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보당국과 정보를 교류해 온 우리 정보 당국자도 “핵실험 장소인 풍계리를 지속적으로 관찰한 결과 지난해 2월 3차 핵실험 직전 포착된 토사(흙)의 양은 1차 핵실험 때에 비해 절반을 조금 넘었다”며 “이는 핵폭발 장치를 설치하는 장소의 크기가 줄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초기에 비해 일정 부분 소형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폭발 장소의 규모도 줄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핵무기 위협을 판정하는 단계는 플루토늄이나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물질을 얼마나 작게 만들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느냐다. 소형화의 기준은 통상 탄두 중량 1t 이내, 탄두 직경 90㎝ 이내다. 또 야구공보다 작은 크기의 20㎏ 안팎 HEU 속 핵물질이 동시에 폭발할 수 있도록 하는 기폭장치 기술도 보유해야 한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핵무기를 소형화하려면 고성능 고폭장약과 핵물질들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도록 하는 충격 반사체의 무게와 두께를 최적화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이 1990년대 초반부터 기폭장치 실험을 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최근 기폭장치 실험 횟수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이를 놓고 정보 관계자들은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를 위한 막바지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한·미 정보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북한이 HEU를 사용하는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리틀보이(Little boy)가 HEU다. 별도의 폭발실험 없이 제조가 가능하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45년 8월 고농축우라늄 64.1㎏을 사용해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것처럼 포신형(gun-type)의 기폭장치를 사용할 경우 핵실험 없이도 무기화가 가능하다”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피해 핵무기 제조를 시도할 경우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영변 핵단지에서 가동 중인 HEU 공장 외에 국제사회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북한이 비밀 지하시설 등에 추가로 운영할 가능성이 큰 만큼 북핵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지난해 2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실시한 3차 핵실험도 HEU를 활용한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론 “현재까지 북한이 핵무기를 소형화했다는 정보나 증거는 없다”(국방부)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이 영변 HEU 공장에서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데다 핵물질을 폭발시키는 기폭장치 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어 핵무기 보유에 거의 다가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도 지난달 24일 미 국방부에서 기자들을 만나 “북한은 이미 세 가지(핵물질·기폭장치·미사일) 능력을 통합했다고 말하고 있다”며 “핵을 소형화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용수·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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