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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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0번째 어린이날을 맞는다. 어린이날도 벌써 회갑을 맞은 것이다.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한 조선소년운동협회의 소년운동가들이 1923년 5월1일을 첫「어린이날」로 제정하고부터 어느덧 오늘에 이르렀다.
우선 어린이날 제정의 의미를 살피면 제일 먼저 강조되어야 할 것이 어린이 존중의 사상이다.
「어린이」는 말 그대로 「어린 사람」으로 어린 인격을 대접해 부른 이름이다.
그들은 비록 성인이 갖는 법률적 권리와 책임을 갖지는 않았지만 인격자체는 인정받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취지가 거기에 역력하다.
그것은 하나의 의식개혁이었다. 여태까지 어른의 부속물로 천시되고 홀대되는 어린이들의 존재가 새삼 존귀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은 그 시대로서는 일면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는 이때부터 「아이」도「아해」도 또 「소년」도 「아동」도 아니게 된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어린이 존중의 사상이 세계어린이연동의 선편이라는 것은 자랑스럽다.
국제연맹이 제정한 「어린이 인권선언」이 1924년에 발표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은 벌써 2년 전인 1922년 천도교 소년 회에 의해 독자적인 행사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다음해 범사회적 범국민적「어린이날」로 발전하였던 것으로도 우리 어린이운동이 세계를 리드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날 제정이 일제하에서, 특히 3·1운동이 있은 바로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더욱 중시되어야겠다.
나라를 잃고 좌절한 민족에게 있어 내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절실한 것이었다. 그 희망과 기대의 상징이며 내일의 일꾼인 어린이를 존중하고 참답게 교육하고 기르는 것은 그때의 최대의 과제였다.
그런 뜻에서 그것은 민족운동이며 사회운동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60회를 맞아도 여전히 싱싱하고 새로운 의미로써 다가온다.
미래의 역사를 담당할 어린 세대에 대한 사람과 기대가 여전히 충만할 필요가 인식되는 때문이다. 바른 정서, 바른 성장, 바른 교육을 위해서 어린이날이 더욱 새로워져야 겠다는 기대도 있다.
그 점에서 회갑을 맞은 어린이날을 계기로 어린이존중의 사상과 실천은 새로운 반성을 거쳐야 할 필요도 느낀다.
그것은 첫째 「어린이존중」이 「어린이의 방임」과 혼동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다.
지난 세월동안의 어린이존중과 보호운동의 효과는 다대하였지만 그 결과 오늘의 핵가족제도 아래서 새로 과보호와 무 훈육의 폐해가 점증하고 있다. 어린이에 대한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이로되 어른의 무조건적 사람이 어린이들을 혹은 무기력하게, 혹은 무책임하고 버릇없게 기른 폐단이 널리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어린이에 대한 사람은 이성과 절도가 적절히 조절된 것이어야 하며, 건실하고 책임있는 인간으로 키우는 노력이 기성세대의 책무임도 깨닫게 된다.
아울러 어린이복지가 어린이날 하루에 그치지 않아야겠다. 이 날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고궁을 무료로 개방한다거나 호기심을 일으키는 구경거리 행사를 마련한다고 어린이복지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하루동안의 야단스런 행사 때문에 어린이들이 몹시 고달픈 경우도 있다.
따라서 어린이복지시절들이 하루빨리 증설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관과 도서실은 늘 초만원이며 그들이 마음놓고 뛰어 놀 장소조차 시원치 않다. 서울의 경우 3천5백 명에 놀이터 하나라는 한심한 통계조차 나오고 있다.
어린이들이 지적, 도덕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복지시절을 비롯한 사회환경의 불 비는 실로 심각한 상황이다.
어린이들이 경제적으로 쪼들려 영양실조에 빠지는 것도 심각한 일이지만 사회환경의 불 비로 우리의 후손들을 문화 실 조의 불건전한 인간으로 키운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임을 통감해야겠다.
60회를 맞는 어린이날에 우리 사회가 함께 진지하게 반생하며 그 문제들의 타개에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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