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전사들도 외국어회화 공부-서울 명덕운수, 자체강사 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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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웨어 아 유 고잉』『도찌라니 이끼마스까』 (어디로 가십니까). 서울 등촌동 16의5 명덕운수 10평 남짓한 회의실。새벽공기를 울리는 목소리가 낭랑하다。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에 대비, 영어와 일어회화 공부에 열을 올리고있는 젊은 택시 운전기사들의 모습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초로의 동료 운전기사 김영수 씨 (56)가 무보수 강사로 나와 일어를 가르친다. 이 회사 상조회 회장직을 맡고있는 김 씨는『일어를 다소 알고있는 덕분으로 젊은 기사들의 간청에 못이겨 강사로 나왔는데 막상 가르쳐보니 쑥스럽기도 하지만 젊은 기사들의 배우려는 열의가 높아 큰 보람을 느끼고있다』고 했다.>
처음 외국어를 시작한 것은 지난 3월10일. 회사가 후암동에서 이곳으로 이사해오면서 바로 시작했다.
물론 목적은 외국 관광객의 불편을 덜어주고 보다 친절한 서비스를 위해서였다.
사원들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치고있는 이 회사대표 안재정 씨 (45) 는 회화공부의 목적이 올림픽 대비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자체교양을 쌓음으로써 보람있고 서로 아끼는 직장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을 하다보면 강사나 기사들이나 모두 솜처럼 피곤해지게 마련.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침 구내방송.
직접 강의를 할 수 없는 날엔 모든 기사들이 들을 수 있도록 새벽 6시부터 30분간 영어와 일어 카세트테이프를 번갈아가며 틀어준다.
그리고 세차장 옆 칠판에는 하루 두마디씩의 간단한 영어회화를 적어놓아 짧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교대제 근무이기 때문에 75명의 기사들 중에서 실제 교육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30명정도.
다소 진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지만 외국어를 배운다는 보람에 기사들은 즐겁기만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는 김종헌 씨 (24·서울 상암동 4)는 처음 영어회화를 회사에서 배운다고 했을 때는 뒤늦게 무슨 공부냐고 생각했지만 막상 조금씩이나마 기억을 되살려 배우게 되니 필요한 경우도 생긴다고 했다.
또 이 회사 김정수 씨 (28)도 언젠가 김포에서 프라자호텔로 가는 미국인 바이어를 태우고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몇마디 말을 건넸더니 무척 반가와하며 팁을 1천원이나 덧붙여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회사측은 앞으로 3개월마다 시험을 치러 성적이 우수한 기사에게는 5만원이상 최고 10만원까지 포상할 계획이다.
대표 안 씨는 외국어공부를 시작한 이후 젊은 기사들의 자기생활에 대한 성실도가 높아져 회사도 덕을 보고있다고 털어놓으면서『택시는 결국「움직이는 응접실」이어야 한다』고 서비스정신을 새삼 강조했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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