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지키던 이란 학생도 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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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년 전에 있었던 미국의 이란 인질구출작전의 원래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대규모적이었으며 또 이 비밀작전계획은 몹시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워싱턴포스트 지가 25일 특집으로 보도했다.【워싱턴=김건진 특파원】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인질구출작전 2주년을 맞아 1페이지 이상에 걸쳐서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있던 펜터건의 비밀작전계획의 전모를 폭로하면서『이 작전에는「찰리·멕위드」대령이 지휘하는 1백명의 특공대만 동원된 것으로 발표됐으나 사실은 작전당시 90명으로 구성된 특공대 제2진(암호명 비단뱀)이 이집트의 공군기지에 대기 중이었고 이와는 별도로 83명의 미 육군 유격대원들이 테헤란 근교 공항공격 임무를 띠고 출동태세를 갖추고있었다』고 말했다.

<이란군복으로 위장>
구출작전에 관한 논쟁이 아직도 계속중인 가운데 당시 이 작전에 깊이 관여했던「스탠필드·터너」전 CIA국장은『이 작전이 미국에 남겨준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존즈」합참의장은『과거를 자꾸 뒤지는 것은 결코 미국에 유익한 일이 아니다』라고 얼버무리고 있으나 최근「브레진스키」전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의 증언과 이번 워싱턴포스트의 폭로 등으로 이 작전에 대한 논쟁은 쉽사리 사그라들 것 같지가 않다.
더구나 현재 최소한 6명의「카터」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이 구출작전에 관한 책을 쓰고있기 때문에 이 논쟁은 상당기간 계속될 조짐이다.
다음은「카터」행정부 당시 구출작전의 수립과정에 참여했던 미 행정부 고위관리와 실제작전에 참여했던 미 특공대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가 종합한 작전의 전모와 숨겨졌던 내막을 요약한 것이다.
새로 폭로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①미 CIA는 이미 테헤란 대사관 부근에 수명의 요원을 침투시켜놓은 한편 과격파 이란 경비병들을 매수하는데 성공했다. 매수된 이란 과격파 학생들의 일부는 구출작전 당일 밤에 대사관경비를 보도록 공작이 돼있었다.
②「카터」대통령은 가능하면 이란인들을 살상하지 말도록 희망했으나 작전수행과정에서는 합참의장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전권을 부여했다.
③미 공군의 3대의 C-130 무장헬리콥터(암호명 망치)를 테헤란 상공에 추가배치, 만약의 사태에 대비토록 했다. 만일 특공대가 인질을 끌고 나오는 순간에 이란 군중들이 방해를 할 경우엔 이 무장헬기들은 군중을 향해 기관총 세례를 퍼부을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④ 미 국방성은「맥위드」대령 휘하의 특공대(암호명 델터팀)에 어떤 위기가 발생할 경우 즉각 출동할 수 있는 90명 규모의 제2특공대를 이집트 공군기지에 대기시켰다. 이와는 별도로 테헤란근교 만자리예 공항을 접수, 수송기의 이륙을 돕기 위해 83명의 미 육군유격대가 배치됐다.
⑤「레이건」대통령이 취임한 후 신임 「윌리엄·케이시」CIA국장은 이제까지 발표된 인질구출작전 경위의 진실성에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고도의 「극비보고서」를 「레이건」대통령에게 제출했다.
⑥인질을 수송할 미군 헬기들은 모두 이란군 마크를 달고 위장했으며 미 특공대원들과 함께 공수될 이란 요원들은 모두 이란군복을 입고 있었다.
⑦작전당일 밤 미군 기들이 지나가는 지역의 이란공군 병력을 대폭 감축시켜 이란의 대공방어를 허술하게 만들었다.
미 CIA와 협조하던 한 이란군 장성이 이 작전을 돕기 위해 그날 밤 이란공군에 지대공 미사일과 레이다 시설을 북서쪽 국경지대로 재배치하라는 특별명령을 내림으로써 이란공군병력을 대거 빼돌린 것이다.
⑧특공대가 인질을 구출하는 순간 이 작전을 이란 땅 안에서 지원하는 미국인 수는 4백명도 넘게 돼있었다.
⑨「브레진스키」보좌관은 이 작전의 중요성을 감안, 자신이 특공대와 함께 직접 현지로 가겠다고「카터」에게 건의했으나「카터」는 이를 거부했다.「브레진스키」는 또 누차 보복공격을 병행할 것을 건의했으나「카터」는 이를 거부했고 구출작전도 4월19∼20일 주말이 지나서야 최종 승인했다.

<방송국 폭격은 거부>
⑩특공작전이 알려지고 이란정부가 국민들에게 일제 반격운동을 개시할 경우를 가상, 테헤란 라디오방송국을 폭격하자는 의견이 제시됐으며「카터」는 이를 거부했다. 비밀구출작전의 원래 계획은 이러했다.
인질사건이 발생한 것은 79년 11월4일.
미 국방성은 바로 그날 오후부터 구출작전의 초안을 짜기 시작했다.
가장 큰 애로점은 테헤란이 너무 내륙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일 인질들이 해안근처에 억류돼있었다면 구출작전은 아주 쉽게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미국정부는 우선 이집트에 접근, 협조를 구했다.「사다트」대통령은 12월에 가서 애스원 댐 근처의 케냐 공군기지를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미 국방성은 즉각 레이다정찰기, 공수지휘본부시설 등을 이집트기지로 이동시켰다.
겨울에 들어서 미국-이란간의 협상이 한참 무르익어 갈 때는「해밀턴·조던」백악관참모장과 이란관리가「카터」대통령을 만나보는 문제까지 논의했다. 그러나 협상과 협박이 계속 반복될 뿐 석방가능성이 사라지자 이제 남은 방법은 특공작전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80년 4월16일 백악관상황실에서 국방성이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한 특공작전의 개요는 이러했다.
4월24일. 미국의 MC-l30수송기 l대가 이집트의 케나 공군기지를 발진, 오만의 마시라섬 기지에 잠시 기착했다가 하오 6시55분에 이란해역 상공으로 침투한다.
나머지 수송기 5대는 북서쪽 산악지대로 비행, 이란내륙 5백마일 지점의 사막 제l지점으로 향하면서 앞으로 특공대 및 유격부대가 작전할 지점을 면밀히 체크한다.
1시간 안에「멕위드」대령 휘하의 특공대윈 델터팀이 2대의 MC-30기로 도착하고 곧 3대의 C-130급유기가 합류한다. 뒤를 이어 항공모함 니미츠호를 출발한 8대의 헬기가 사막 제1지점에 도착한다.

<모든 정보는 완벽>
60분 내로 재급유를 마친 헬기들은 1백명의 특공대원과 약12명의 이란요원을 싣고 테헤란으로 향한다. 비행시간은 2시간13분.
헬기들은 테헤란 동남쪽 50마일 지점에 특공대원들을 내려놓고 3마일 떨어진 산 속에 가서 숨는다. 헬기가 숨을 이 지점(암호명 휘그바)은 사전에 불도저로 잘 밀어놓은 좋은 피난처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8대의 화물트럭이 와서 특공대원들을 싣고 하이웨이를 질주, 이란의 한 비즈니스맨이 제공한 테헤란교외 창고(암호명 차리)에 가서 대기한다.
이 트럭들은 화물수송을 하는 트럭으로 위장하고 눈치 안 채게 시간차를 두고 창고로 집결한다. 이미 위조된 제3국의 패스포트를 들고 테헤란에 침투한 미 CIA요원들은 다음날에 이 창고에 와서 최종브리핑을 해준다.
저녁때쯤 대원들은 몇개 조로 나뉘어 15마일 떨어진 테헤란근교의 다른 집합장소로 이동, 공격준비를 한다.
이미 테헤란에 침투, 활약중인 CIA요원들은 미 대사관을 항상 경비하는 이란 과격파의 숫자는 15명에 불과하며 그나마 밖에서 경비하는 사람은 3∼4명뿐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미 대사관 주변에 부비트랩과 지뢰를 묻었다는 소문도 가짜임이 드러났고 인질들이 억류된 정확한 위치도 마지막 순간에 확인됐다.
한 행정부 고위관리는『이 모든 정보는 완벽히 정확했음이 나중에 판명됐다』면서 작전실패를 안타까워했다.
특공대의 미 대사관공격개시(암호명 북소리) 시간은 이날 밤 12시10분으로 예정됐다. 작전개시 신호와 동시에 한 그룹은 대사관의 전화선과 전기선을 즉각 절단한다. 깜깜한 밤중에 특공작전을 하는데는「시간」이 생명이다. 저항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살된다. 구출작업에 도움이 된다면 미국작전에 협조한 이란인들도 사살한다는 게 특공대의 계획이다.
인질과 특공대원들은 지체없이 대사관 구내 동북쪽에 집결한 후 길 건너에 있는 축구경기장으로 뛰어간다.(암호명 발전기) 이미 축구경기장 꼭대기에 배치된 미 전투특공대는 인질과 대원들의 이동을 방해하는 이란경비원이나 군중들에게 엄호사격을 할 준비가 돼있다. 축구장에 집결한지 몇분 후 헬리콥터 2대가 날아온다. 7분쯤 후에 다시 2대, 다시 몇분 후 나머지 2대가 도착해 인질과 특공대 모두를 싣고 떠난다. 축구장에서의 탈출작전은 30분 안에 완료한다.
만일 이 과정에서 이란군중들이 풀려 나오면 특공대원과 함께 행동하던 이란요원들이 이란말로『우리는 미군의 구출작전을 저지중이다』또는『우리는 쿠데타음모를 분쇄중에 있다』고 소리치도록 한다.
이란군중들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해지거나 이란인들이 총을 쏘며 대항할 경우엔 상공을 지키던 3대의 미군 무장헬기가 기관총세례를 퍼붓는다.

<소련엔 사후에 통고>
모든 헬기는 1개의 속사포와 4개의 기관총으로 무장돼있으며 서치라이트와 적외선야간조준장치도 갖추고 있다.
미군 지휘관들은 이란군중이 아무리 거칠다 하더라도 이 미군 무장헬기의 가공할「융단총격세례」를 받으면 금방 흩어질 것이라고「카터」를 안심시켰다.
델터팀이 미 대사관을 기습하는 같은 시각에 일부 특공대는 경비가 허술한 이란외무성을 습격, 미 대리대사 등 3명을 구출, 헬기로 빠져 나온다.
인질과 특공대원을 실은 헬기와 AC-30기들은 38분간을 비행해서 이란사막에 있는 만자리예 활주로에 도착한다. 이 활주로는 이미 83명의 미 유격대가 장악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인질과 대원들은 3대의C-4l수송기를 타고 이란을 탈출, 사우디아라비아 상공을 거쳐 이집트공군기지에 도착한다.
만일 이때 이란의 F4전투기가 미 수송기 격추를 위해 발진하게 되면 미 공군은 이란 전투기들의 레이더와 교신을 교란시키는 한편 니미츠 항공모함에 대기중인 F-14전투기를 동원해 야간전에 미숙한 이란 전투기들을 격추시킨다.
백악관은 작전이 끝난 후 소련 측에 대해 사건개요를 실명해 준다. 작전과정에서 소련군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면 미국은 유럽주둔 미군과 2대의 항공모함 병력을 인도양에 추가배치, 이에 대응한다.
4월 16일 백악관상황실에서「카터」대통령에게 이상과 같은 보고를 마친「존즈」합참의장은 그 자리에서「멕위드」특공대장을「카터」대통령에게 소개했다.
브리핑이 끝난 후에도 궁금증이 많은「카터」대통령은『내가 더 도와줄게 없느냐』고 물었으나 「존즈」합참의장은 모든 구체적인 작전은 펜터건에 맡겨달라고 말했다.「카터」대통령은 『일단 작전이 개시되면 나는 세부적인 작전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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