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 역사학계가 인정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군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아베 내각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공개적으로 밝힌 입장이기도 하다. 스가 장관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소 내 성 접대 강제성 여부에 대해 “국내외 역사학자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언명했다. 아베 내각이 이제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일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연구회가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연행에 깊이 관여하고 실행한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베 내각은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연행했다는 이른바 ‘요시다(吉田)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16건의 기사를 아사히신문이 취소한 걸 계기로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왔다. 요시다 증언이 허위로 드러났기 때문에 전체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투로 여론몰이를 해왔다. 그러나 2100명의 회원을 거느린 일 최대, 최고 권위의 역사학연구회는 “요시다 증언의 진위와 관계없이 일본군의 관여 아래 강제연행된 위안부가 존재한 것은 분명하다”는 공식입장을 담은 성명을 최근 발표했다.

 역사학연구회는 “강제연행은 아베 총리가 언급한 것처럼 ‘집에 쳐들어가 억지로 데려간’ 사례에 한정해선 안 되며 감언과 사기, 협박, 인신매매가 동반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연행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납치 형태의 강제연행도 인도네시아 스마랑과 중국 산시(山西)성 등 사례에서 밝혀졌으며 한반도에서도 피해자의 증언이 다수 존재한다고 부연했다. 역사학계 뒤에 숨어 위안부 문제에서 발을 빼기 어렵게 된 것이다.

 아베 내각은 그제 일본을 방문한 네덜란드 국왕이 “화해의 토대가 되는 것은 서로 겪은 고통을 인식하는 것”이라며 일왕 면전에서 과거사를 거론한 진의를 잘 생각해야 한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진정한 한·일 화해의 첫걸음이다. 아베 내각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우행(愚行)과 작별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