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칼칼하고 도도하다 … 박완서의 티베트·네팔 순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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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1월 주제는 ‘다시 꺼내보는 명작’입니다. 15년 만에 새 옷을 입고 출간된 고 박완서 작가의 여행기, 노벨문학상 수상 후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대표작 등 3권을 골랐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명작의 깊은 향취에 빠져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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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글, 민병일 사진
열림원, 352쪽
1만4800원

여행을 계획할 때 “미리 정보를 주고 싶어하는 남의 친절조차 달가워하지 않”던 예순 다섯의 노작가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티베트 땅으로 순례길을 떠나기로 한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착착 추진됐지만 대신 여행기를 써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책은 2011년 작고한 박완서 작가가 1995년 민병일 시인 등과 티베트·네팔을 기행하고 이듬해 숙제로 적어낸 글이다. 절판된 지 15년 만에 다시 빛을 본 개정판이다. 그러니 시효가 한참 지난 여행기다. 하지만 노작가의 칼칼하고 도도한 문장은 갓 잡은 물고기 마냥 펄떡거린다.

 라싸 공항에서 티베트 땅에 첫 발을 디디며 일행이 선글라스를 쓰는 장면에서 여행기는 시작된다. 박완서가 아니라면 누가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엔 적의마저 느껴”지는 “싱싱하게 위협적인” 햇볕을 쏟아내는 티베트의 하늘을 “나의 기억 이전의 하늘”이라고 쓸 수 있을까. 게다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선글라스를 끼고 붙어 다니는 우리 일행은 영락없이 줄봉사의 행렬이었다”와 같은 특유의 절제된 유머 감각은 복제 불능이다.

민병일의 사진. 목축과 농업을 겸하면서 자급자족을 이루며 살던 20년 전 티베트의 시골 풍경. [사진 열림원]

 제 아무리 한국의 대표작가라 해도 오지 여행의 고생은 피할 수 없다. 번번이 모래톱에 박혀 멈춰 서는 배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다 라면을 끓여 나눠 먹고, 걸핏하면 시동이 꺼지는 버스를 타고 한 길만 잘못 들어도 낭떠러지행인 굽은 길을 오르내린다. 고산병을 덜어준다는 물을 시도 때도 없이 마셔대느라 차가 섰다 하면 “엉덩이라도 가릴 만한 돌을 찾아” 나선다.

 고생이 고생만은 아닌 것은 티베트의 자연과 사람이 주는 선물 덕분이다. 차를 타고 멀리서 봤을 땐 불모지, 산의 원형이라며 감탄했던 그 땅에서 배설할 곳을 찾다 발견한 꽃의 생명력 같은….

 하지만 티베트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시선은 혼란스럽다. 불상과 사찰은 온갖 금은보화로 치장돼 화려한 반면, 반들반들할 정도로 때에 찌들고 가난하나 영혼이 맑은 티베트인들은 대체 무슨 속죄를 하겠다고 오체투지를 하는가.

 “제 땅을 다 중국한테 내주고 순례만 하면 제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목민이나 순례자의 순하디순한 표정에 비해 대체적으로 거만하고 방약무인해 보이는 한족들을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땅이 남의 식민지였을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요직과 부를 차지한 일본인들의 표정도 그렇게 방약무인했었다.”(212쪽)

 티베트에 대한 이러저러한 작가의 오해는 여행 날짜가 쌓여가며 ‘이해’로, 나아가 ‘깨달음’으로 바뀌어간다. 아는 척, 젠 체 하지 않는 순진한 감성은 여전히 간직한 채로다.

 그런데 여행기 제목이 왜 ‘모독’일까. 티베트 기행기 제 6장에 해답이 나오는데, 소설의 절정과 같은 대목에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제목에 대한 궁금증도 책장을 끝까지 넘기는 동력이니 스포일러가 될 내용은 밝히지 않는다.

 아직도 그곳 사람들은 야크의 똥을 한덩이씩 흰 벽에 붙여 말릴까. 20년 전에 비해 티베트는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자꾸 검색창에 ‘티베트’를 입력하는 건 독서의 후유증이다. 여행기 시효가 지났다는 말은 무효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S BOX] ‘환생’ 두 명의 판첸 라마

책에는 판첸 라마의 즉위식 하루 전날의 목격담이 나온다. 말끔한 정장을 빼입은 한족 고위 관리들로 도시가 북적이고, 타쉬롱포 사원엔 즉위식 전에 이미 대여섯살 정도 어린이인 판첸 라마의 사진이 걸려있었다는 내용이다.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에 이은 티베트 불교 제2의 지도자다. 둘 다 환생에 의해 후계자가 정해진다. 중국 정부는 1989년 사망한 10대 판첸 라마의 환생인 소년을 찾는 작업을 벌여왔는데, 1995년 5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소년 치에키 니마를 활불(活佛)로 지명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뒤이어 기알첸 노르부를 11대 판첸 라마라고 공식 선언하고, 니마는 감금한다.

그래서 판첸 라마는 두 명이다. 작가는 제8대 판첸 라마의 즉위식이라고 썼지만 여행 시기상 11대 치에키 니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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