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 문제 때문에 2등급 … 교사 꿈 포기 못해 결국 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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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누군가에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다. 마땅히 출제에 오류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고, 오류가 발견되면 빨리 바로잡아야 하는 까닭이다.

지난 16일 서울고법이 현재 대학 1학년이 지난해 치른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에 오류가 있다고 판결하면서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지난해 잘못된 이 문제로 인해 나락을 겪은 수험생과 부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①‘추가합격’ 놓치고 ‘반수’하는 김모(19)군=교사를 꿈꿨던 김군은 모의고사에서 항상 교대가 안정권이었다. 그런데 8번 문제를 틀리는 바람에 세계지리가 2등급으로 떨어졌다. 수도권 한 교대에 정시 원서를 넣고 예비번호 36번을 받았지만 추가합격은 32번에서 끝났다. 생각에 없던 지방 국립대에 입학해 1학기를 마쳤다. 꿈을 버리지 못하고 휴학한 뒤 ‘반수’ 중이다.

그는 “한 문제 때문에 무너진 교사의 꿈을 버릴 수 없어 다시 도전한다”고 말했다.

 ②육수(六修) 끝 떠밀려 대학 간 박모(24)씨=박씨는 육수생이었다. 군 입대 문제가 걸리는 바람에 사실상 지난해 수능이 마지막 기회였다.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에 진학해 외교관이 되는 걸 꿈꿨다. 하지만 추가합격 대기자 4명을 남겨두고 입학문이 닫혔다. 그는 “소수점 차이로 대입에 탈락한 경험이 몇 번 있는데 3점짜리 8번 문제는 너무나 컸다”고 털어놨다. 어쩔 수 없이 서울 한 사립대에 입학한 그는 한국외대를 지나가거나 외교 뉴스를 볼 때마다 ‘나도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③‘포기하는 법’ 배운 신모(19)양=신양은 지난해 성균관대·중앙대 수시 모집 논술우수자 우선선발 전형에 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세계지리 2등급을 받는 바람에 수능 최저등급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정시에선 한 지방 교대에 원서를 넣었다. 예비번호 30번을 받았지만 마음만 졸이다 떨어졌다. 결국 하향 지원한 지방대 영어교육과에 들어갔다. 이민까지 고민했다. 그는 “소송을 겪으며 포기하고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며 “지금 구제해준다 해도 ‘꼬리표’를 달고 대학에 들어가기가 두렵다”고 했다.

 ④법조계 실망해 계열 바꾼 딸 학부모 김모(46)씨=김씨의 딸은 수능 전 과목에서 5문제밖에 틀리지 않았다. 변호사를 꿈꿨지만 평가원이 선임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들의 변론을 보고 실망해 진로를 돌려 교차지원으로 자연계열에 진학했다. 김씨는 “이번에 딸이 억울한 사람을 변호하고 싶어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벽을 절실히 느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당시 평가원장과 출제진의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의 대법원 상고 기한은 11월 5일이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있는 교육부는 해당 문제를 모두 정답 처리할 경우에 대비해 등급이 바뀌는 4800명 중 해당자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못 맞춰 수시에서 떨어진 경우는 구제가 간단하지만, 정시는 대학별로 전형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 학생을 정원 외 입학이나 편입 등의 절차를 통해 재입학시키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피해 학생 구제를 위한 특별법 발의를 준비 중이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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