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우리 거야" → "너희 거야" 노래 바꿔 부르다 총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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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에 대한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가 28일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병기 국정원장(오른쪽)이 국감 시작에 앞서 한기범 1차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빈 기자]

북한에는 ‘사회주의는 우리 거야’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30만 명 넘게 굶어 죽은 1990년대 소위 ‘고난의 행군’ 시대부터 북한 주민들이 애송했다. 최근 북한 노동당 고위 간부들이 노래방에서 ‘사회주의는 너희 거야’라고 가사를 바꿔 불렀다. 이들은 또 ‘우리 당이 고마워’라는 노래의 가사를 ‘너희 당이 고마워’로, ‘증오는 원수에, 사랑은 조국에’를 ‘증오는 본처에, 사랑은 정부(情婦)에’ 등으로 부르다 북한 당국에 적발돼 총살당했다. 국가정보원이 28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내용이다.

 여야 정보위 간사인 이철우(새누리당)·신경민(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총살당한 간부들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한 전역을 공포 정치로 몰아가는 등 간부들을 옥죄는 데 대한 반발심에서 노래를 개사해 부른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또 “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반역 혐의로 처형한 장성택 잔존세력에 대한 2단계 청산 작업을 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그림자를 없앤다’는 각오로 처절하게 청산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최근 들어 뇌물 수수나 한국 드라마 시청, 여자 문제 등으로 당 간부 10여 명이 적발돼 총살됐다는 보고도 했다.

 김 위원장이 특정 군단의 포 사격 명중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군단장을 비롯한 군 간부 전원을 2계급 강등 처분한 일도 공개했다.

 공포 정치는 당 간부뿐 아니라 일반 주민에게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은 “북한 당국이 공개처형을 확대하고, 정치범 수용소도 확장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현재 북한 전역 5곳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10만여 명이 갇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되는 곳이 함경북도 길주에 있는 만탑산 수용소다.

 국정원은 “기존에 있던 만탑산 수용소를 서울 여의도 면적(8.40㎢) 64배 규모로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정치범 수용소는 함경남도에 있는 요덕수용소다. 국정원은 북한이 인권 문제와 관련해 국제 사회의 관심이 요덕수용소로 쏠리자 부담을 느껴 요덕수용소에 감금된 이들을 만탑산 수용소로 옮기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철우 의원은 “김정은 시대 들어 정치범 수용소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점점 북한의 인권 문제에 민감해지는 상황에 따른 조치”라고 말했다.

 단체 생활을 하며 임금의 70~90%를 당국에 상납해야 하는 외국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의 숫자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와 중국, 쿠웨이트 등에서 외화벌이에 나선 이들이 2010년 2만6000명에서 최근 5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외국의 국산 기술 유출 시도와 관련, 국정원은 “현재 외국인 170만 명과 특파원 230명, 외국 정보기관 요원 100여 명이 국내 체류 중”이라며 “지난해 첨단 군사기술인 EMP(전자기파) 기술을 러시아에 넘긴 일당을 적발하는 등 방첩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병기 원장, “정치 논란 자성”=이병기 국정원장은 이날 대선 때 댓글 사건 논란에 휩싸였던 것과 관련해 “이름 없이 묵묵하게 국가 안보를 책임져야 할 국정원이 심려를 끼친 것을 자성한다”며 “기본으로 돌아가 과감하게 국정원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글=권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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