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찾은 요우커 올 200만인데, 국내 항공사엔 그림의 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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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은 제주와 중국 저장성 원저우(溫州)를 오가는 부정기 노선을 지난해 8월 포기해야 했다. 2012년 첫 취항해 평균 탑승률이 93%인 ‘효자 노선’이었지만 중국 항공당국이 운항 연장을 불허해서다. 자국의 동방항공이 제주~원저우 정기 노선을 개설했다는 게 이유였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총 122회를 운항하면서 어렵게 신시장을 개척했는데 한 순간에 기회를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티웨이항공도 올 7월 제주~옌지(延吉) 취항을 접었다. 역시 중국 남방항공이 신규 취항하면서 면허를 받지 못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여름철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난감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제주를 찾는 중국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제주~중국 간 항공 수요도 늘고 있지만 정작 국내 항공사들은 ‘불균형 족쇄’를 호소하고 있다. 같은 노선을 오가는 중국 항공업계가 특수를 누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 항공사는 자유롭게 제주행 여객기를 띄울 수 있지만 국내 항공사는 부정기 면허 취소, 정기 노선 편성 난항 등으로 발목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8월까지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인은 195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9% 늘었다. 지난달까지 제주~중국 간 항공 운항횟수는 9700편, 탑승객은 143만 명이었다. 특히 중국 항공사를 이용한 여행객은 100만 명(107만 명)을 넘었다. 국내 항공사는 같은 기간 36만 명을 실어 나르는 데 그쳤다. 탑승객 4명 중 3명이 중국 항공사를 이용한 셈이다. 최근 2~3년 새 서로 엇비슷하던 한·중 항공사 간 탑승객 비율은 올 들어 중국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국내 항공업계는 “1998년 항공 자유화 조치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98년 4월 제주공항에 대해 ‘일방적 개방’을 선언했다. 항공 운항횟수나 좌석 공급 규제를 풀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2006년 한·중 항공회담에선 “중국 측 지정 항공사는 시장 상황에 따라 중국~제주 노선에 추가 운항이 허용된다”고 합의했다.

 제주 하늘 길이 100% 열리면서 중국은 28일 현재 10개 항공사가 20여 개 도시에서 제주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올해에만 오케이·샤먼·톈진항공 등이 15개 정기 취항을 시작했으니 ‘제주행 항공 대공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항공사는 대한항공 제주~베이징을 포함해 3개 항공사, 7개 노선 이 운항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정기편만 해도 3개월 단위로 운항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규제가 까다롭다”며 “이마저도 중국 항공사가 정기 노선을 편성하면 우리 측은 면허를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보여 정기 노선을 개설하는 것도 어렵다.

 정부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국토교통부 이문기 항공정책관은 “제주도내 관광객 유입이 크게 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시장 불균형에 대해선) 현재로선 정기 운수권 확대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항공대 윤문길(항공경영학) 교수는 “중국의 주요 항공사가 주문한 여객기가 550대다. 앞으로 공세가 더 거세질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중국의 지방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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