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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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저녁>
김숙자

<대구시수성구시지동 경북아파트311>
지피는 장작불에
욕망은 홍조로 익고
으스름 용마루 위
연기로 감긴 전설
불빛 든 어느 봉창엔
내 유년이 실린다.
밀리는 땅거미에 묻어
들녁에 설라치면
까맣게 잊은 미각
김 오르는 소반 아래
부르터 덧없는 이 방황
그 자락을 묻으리.
향방없는 발길 보다
앞장서는 가쁜 마음
저만치 들길 달려
산밑 마을 외딴 초가
사립문 밀고 들어가
등불 아래 앉는다.

<연화송>
최중태

<서울성북구 하월곡동90의716>
육신은 이토 속에
꽃으로 하늘 보며
사바의 속진 속에
여래의 법신인가?
오욕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믿음이여!

<잃어버린 명동>
김문억

<서울종로구 이화여대부속병원>

불빛이 찬란해서
명동이라 했는가
별이 없으니
하늘도 없나보다
맹인은
청중도 없이
심청가를 부른다.

까맣게 병든 나비
목 밑에 매달리고
쓸쓸히 돌아 가던
시인은 어디 있나
가인은
유리 속에서
옷음마저 잃었네.

<고향>
전현수

<서울성북구종암1동82의53>
I
손끝으로 일궈만든
한 뼘 밭엔 꿈이 가득
삼칸 초가 지붕
새 짚으로 이엉엮고
해지면 마실 손님들
말 꽃 피던 사랑방.

티없이 소박한
새 하얀 꿈을 먹고
산 넘어 시를 찾아
해메던 옛 동심들
동구 밖 재 념어까지
이별뿌린 회억이여.

어언 이십여 성상
그 시절 더듬다가
문득 눈을 뜨면
그리움은 더 절실해
내마음 날개를 달고
고향찾아 날은다.

<노모상>
신영철

<서울성북구돈암동44의23>
궂고
진, 어둔것을
견뎌서 온 외로움.
산수전 눈방을 닦아
놀을 짜고
불을 켜네
백발에 뭉쳐 일생
달을 감는
빛 꾸럼.

<어머니>
정성욱

<부산시 부산진구 관금1동185>
정화수에 잠긴 달밤
모로 누워 피는 향불
허연 머리 가지런히
은비녀 다시 꽂고
실타래 구술을 꿰듯
걸어 보던 어머니.
삼경을 지샌 마음
풀어 보면 마음 아파
한 됫박 부어둔 정
헤쳐 본들 알리오
떠나간 을숙도 철새
깃을 털고 돌아 온다.

<사모곡>
김정희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5가169>
장지에 홀로 앉아
한판 굿을 당겨 보면
저리도 고운 가슴
애조로운 곡조속에
끝없이 외로 떠나는
바늘끝 아픈 한아
굽은달 머리 푸는
애달픈 그루더기
한시도 목울 놓아
정감은 쌓이는데
사모곡 소절마다
꽃이 되어 흐르고나
이 해도 저무는 밤
고향 떨기 내려 앉고
결따라 부는 바람
적삼 자락 적셔 드네
문풍지 별빛을 받아
더욱 우는 가얏고여.

<해당화>
차정미

<광주시 중흥동715의5>
I
인연의 머언 자리
맴돌다 지친 하루
꽃망울로 터져나는
그리움 진한 빛깔로
해그늘
쓸고간 자리
정적 버혀 피는 꽃.

뉘 시름 함께하는
빛 고운 염원인가
한세월 바람벽에
가시로 서슬 돋아
해금수 (해금수)
가락에 젖어 피고 지는
넋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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