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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화(少死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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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독'은 중국의 고전 '맹자'에서 나온 말이다. '고(孤)'는 어려서 부모를 여읜 아이, '독(獨)'은 자식 없는 늙은이를 가리킨다. 또 늙어 아내가 없는 사람은 '환(鰥)', 늙어 남편이 없는 사람은 '과(寡)'라고 해 '고독환과(孤獨鰥寡)'를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잦은 전란과 짧은 수명 탓에 일찍 죽는 사람이 많던 시절의 발상이다.

사회가 안정되고 수명이 길어지면 '고독환과'가 줄어들 것도 같은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부모의 이혼으로 생부 또는 생모와 헤어진 '孤', 부모를 돌보려는 자식의 정성이 희미해진 데 따른 '獨', 황혼이혼으로 쏟아져 나온 '鰥'과 '寡'….

고령화를 분석한 미국의 잡지 애틀랜틱 먼슬리 최근호를 보면 미래에는 이처럼 외로움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듯하다. 이 잡지는 미래의 고령화를 '소사화(少死化.death shortage)'로 표현했다. 또 소사화의 결과 젊은 층의 경제력과 사회적 발언권은 점점 약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더욱 꺼리게 된다고 한다. 소사화가 소자화(少子化)를 부르고 이게 다시 고령화를 심화시킨다는 분석이다. 이래저래 고독의 강도는 높아져만 간다는 얘기다.

물론 고독한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반드시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이들을 위한 새 비즈니스가 등장할 수도 있다. 고독을 달래주거나, 고독에 잘 적응하게 해주거나, 고독을 멋있게 포장해주는 이른바 '고독산업'이다. 노인을 위한 실버산업과는 다르다.

일본에선 이미 고독산업이 여기저기 등장했다. 수박을 통째로 사먹기 부담스러운 독거노인이나 독신자를 위해 혼자 먹어치울 수 있는 참외만한 수박 품종을 개발한 것도 그런 부류다. 또 건설업계에선 아이들 방을 따로 두지 않는 대신 수납공간을 확대한 주택구조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비스나 가전 분야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의 '고독 비즈니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소사화 탓에 좌판을 걷어야 할 입장도 있다. 애틀랜틱 먼슬리는 노인들이 흥겹게 춤추고 있는 파티장 한구석에 저승사자가 무료한 듯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삽화를 크게 게재했다. 소사화 시대엔 저승사자가 가장 고독해질 모양이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