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공영방송의 교양 프로라는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개봉 중인 영화 ‘제보자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의 실상을 폭로한 제보자와 MBC ‘PD수첩’ 팀의 활약을 그렸다. 당시 보도는 한국 방송과 저널리즘의 역사를 얘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대목이다. 물론 ‘PD수첩’으로 상징되는 ‘PD저널리즘’은 막강한 영향력만큼 문제점도 많았다. 2008년 광우병 보도 때는 특히 사회적 논란이 컸다. 극적인 영상과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다 보니 사실 확인보다 단정적인 주장을 남발했다는 비판이다. 크로스체크가 보편화된 보도국과 달리 PD 한 사람이 전권을 쥐는 구조도 맹점으로 지적되곤 했다.

 그렇다고 ‘PD저널리즘’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요즘처럼 누구나 기자일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단순히 그 저널리즘의 주체가 누구인가로 내용을 평가받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또 ‘탐사정신’이라는 점에선 한국 저널리즘의 한 축을 개척한 공로가 있다.

 MBC가 24일 조직개편을 통해 ‘PD수첩’ 등을 만들어 온 교양국을 폐지했다. 내부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물론 교양 프로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예능국으로, 일부는 콘텐츠제작국으로 간다. 교양 프로는 예능국에서, 다큐멘터리는 외주 업무를 담당했던 콘텐츠제작국에서 만든다. 회사는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 수익성 중심 조직 재편 등을 내세웠다. 곧 프로그램 개편도 실시한다.

 요즘 같은 미디어 전반의 위기 속에 ‘돈 되는 프로를 하자’는 데 딴죽을 걸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공영방송 MBC에서 교양 프로의 의미다. MBC는 애매한 형태이기는 해도 방송 편성과 철학의 근간으로 공영성을 내세운 방송이고, 교양이야말로 그 공영성에 가장 부합하는 장르이니 말이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MBC라면 ‘무한도전’이나 ‘전원일기’만큼이나 ‘인간시대’나 ‘PD수첩’ 같은 (시사) 교양 프로들을 떠올린다. ‘아마존의 눈물’이나 ‘휴먼다큐-사랑’ 같은 수작 다큐멘터리들은 또 어떤가. 물론 조직개편 후에도 이런 프로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줄어들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수익성 위기를 고민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공영성도 있으면서 수익성도 있는 고품질 다큐멘터리, 혁신적인 교양 프로에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했던가. 한때는 드라마왕국, 또 한때는 KBS와 어깨를 겨누는 공영방송 MBC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그도 아니면 스스로 공영방송의 자리를 반납하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