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융합교육, 청년은 창업에 눈 돌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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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최상위권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A씨(26·여)는 올 하반기 취업 시장에서 자신이 ‘삼거지악’ 가운데 두 가지를 갖췄다고 어이없어 했다. 삼거지악은 올해 채용 시장에 등장한 신조어다.

 조선시대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범한 부녀자를 빗댄 것으로 순수 인문계열(상경 제외) 전공자나 만 25세 이상(군필 남성은 만 27세), 여학생 등 세 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취업준비생(취준생)은 구직 시장에서 발 붙이기도 힘들다는 의미다. 그는 “문과생이 그나마 도전하기 쉬운 금융 계열 취업을 위해 학부에선 러시아어를 전공했지만 대학원은 상경계를 택했다”면서도 “문과치고는 취업이 잘됐던 경영·경제학과도 더 이상은 ‘취업 안전지대’가 아니다”고 푸념했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 일자리 26만 개(지난해 말 기준)가 ‘미스매치(수급 불균형)’돼 있다. 넘쳐나는 인문계 구직자들을 받아줄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게 채용 미스매치의 주된 이유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해소하려면 경기가 살아나 기업들이 사람을 많이 뽑는 것이 정답이다. 다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채용 미스매치 현상이라도 완화하려면 인문계 출신이 이공계 직무에 지원하도록 돕는 ‘직무 전환(컨버전)’ 교육과 청년 창업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이광석 대표는 “산업계에서는 이공계열 소양을 가진 인재를 원하는데 대학에서는 인문 선호 현상이 수십 년째 진행됐다”며 “결국 산업계의 수요와 공급에 맞지 않게 책상(오피스)에서 일하는 인력들만 대거 양산한 게 경영을 비롯한 오늘날의 문과 취업난”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이공계적 지식을 갖춘 개인과 정보기술(IT) 기업이다. 서울대 공대 재학 시절 ‘천재 해커’로 불렸던 이두희(31)씨는 창업 동아리 ‘멋쟁이사자처럼’에서 대학생 140명 정도를 대상으로 직접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고 있다.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익숙하지 않은 IT 초보자였던 학생들은 코딩 등 프로그래밍을 배운 이후 혼자서 앱을 개발하고 창업을 준비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이렇게 쌓은 IT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창업에 나선 경우도 있다. 멋쟁이사자처럼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박수상(25·서울대 농대 학생회장 출신)씨는 올 8월 대학에 입학하려는 고등학생, 구직자의 자기소개서를 첨삭·지도해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명문대 출신으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에 IT를 결합해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것이다. 박씨는 “동기생 25명 가운데 취업에 성공한 친구가 10명 정도밖에 없었다”며 “상대적으로 어려운 취업을 선택하느니 프로그래밍을 배워 창업하는 게 훨씬 낫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공계 출신으로의 ‘인재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기업들도 대안 마련에 나섰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삼성소프트웨어아카데미(SCSA)’라는 교육 과정을 만들어 인문계 학생을 대상으로 약 6개월간 소프트웨어(SW) 교육을 한 다음 삼성전자와 삼성SDS에 입사시키고 있다.

 삼성SDS 관계자는 “역사나 디자인 등 색다른 영역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에게 SW 교육을 함으로써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LG CNS도 매년 신입 사원을 대상으로 총 4개월간 ‘IT 사관학교’ 식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영민·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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