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학 서울대회] 몽겔라 의장 vs 박근혜 대표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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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겔라 의장 "남성 지도자는 절반만 대변 여성은 나머지 절반도 반영"(왼쪽)
박근혜 대표 "여성 대통령 관심 많지만 정치는 남녀로 구분 안돼"(오른쪽)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의 기조 연설자로 국제교류재단의 초청을 받은 탄자니아의 거투르드 몽겔라(50) 범아프리카의회 의장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났다.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회동한 이들은 서로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권유하며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을 나눴다. 한시간 동안 진행된 대담에서 박 대표는 종종 영어로 질문과 답변을 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 박근혜=아프리카 여성들이 놓여 있는 상황이 궁금하다.

▶ 몽겔라=여성들이 식민지 독립운동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정치권 진출도 활발한 편이다. 하지만 많은 남성이 여성을 차별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고 가정에서도 남편이 경제력과 주도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여성들에게 동등한 교육.의료의 기회를 주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 박=평소 저출산과 여성의 안전문제, 그리고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 등을 꼭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보육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는 풀리지 않으리라고 본다. 한나라당은 국공립 보육시설을 대폭 늘리고 보육 예산도 늘리도록 관련 법안을 추진 중이다. 또 여성들이 안전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도록 전자위치확인제도(일명 전자팔찌 제도) 입법안을 이달 중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부부공동재산제는 입법화를 추진 중이지만 부작용도 예상돼 보완책을 연구 중이다.

▶ 몽겔라=정치 생활을 하면서 "대통령에 출마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봤다. 나는 평소 "어떤 정치인보다 자격이 있다"고 자신있게 대답해 왔다. 나는 남자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정치적 이력도 화려하다. 나는 내가 최고의 후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박 대표도 유력한 후보라고 들었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 박=야당 대표지만 아직 대선후보가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힘들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우리 당에서 다음 대통령을 배출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정치란 남녀의 일로 구분지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여성 후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외계층을 보호하고 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엮어 그늘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내 정치적 목표다. 이 같은 문제를 남성이라고 더 잘 알거나 여성이라고 더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고 본다.

▶ 몽겔라=탄자니아는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내가 속한 다수당에서도 나를 후보로 밀려고 한다. 지난해 범아프리카의회의 의장이 됐기 때문에 아직 국내 정치 일만 돌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항상 내가 '베스트(best)'라고 자신있게 밝히고 있다.

▶ 박=몽겔라 의장은 다음 대통령 선거에는 후보로 출마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 몽겔라=탄자니아의 대통령은 중임제다. 올 선거에 당선되는 대통령이 나와 다른 정책을 추진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출마를 고려할 수 있다. 박 대표도 대통령 선거에 자신있게 나간다고 선언하는 것이 어떤가.

▶ 박=중국 고전에서 왕이 되기 위해 수련을 하던 제자가 "수련을 중단하고 고향에 잠시 가봐야겠다"고 하니 스승이 "네가 내려가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결국 왕이 되기 위한 공부"라고 답했다는 구절이 기억난다. 대선후보가 되느냐와 관계없이 지금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국민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몽겔라=동감이다. 훌륭한 리더십은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우리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대표의 말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여성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낮지만 여성 지도자를 선출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박=여성이 지도자가 될 경우 장점도 많다고 본다.

▶ 몽겔라=여성은 사회 전체를 보면서 작은 이슈에 접근할 능력을 갖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사회 지도층은 남성이다. 이들은 인구 절반의 목소리만 대변하고 있다. 여성이 지도자가 된다면 나머지 절반의 의견도 반영할 것이다. 여성이 지도자가 되면 여성 문제만 다룰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기술.경제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능력이 있다. 나는 리더가 될 역량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우연히 여성일 뿐이다.

▶ 박=지난해 치른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당선자 비율은 13%에 달했다. 16대 국회에서 여성의원 비율이 5.9%였던 데 비하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여성의원들은 숫자는 적지만 국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이 선출직 의원에 당선되도록 제도적 개선에도 노력하겠다. 여성들은 생활밀착형 정치에 강하다고 생각한다. 내년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도 많은 여성 단체장과 의원들이 당선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몽겔라=의회에서 남녀 의원의 비율이 반반씩 돼야 한다는 게 나의 평소 지론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은 아직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상당수의 국가들은 여성의원 비율이 30%대까지 올라갔다. 르완다는 거의 50%에 육박한다.

▶ 박=여성 정치인이 많아져야 한다지만 사실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우는 것이 참 힘들었다. 1999년 한나라당 부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더니 남성 의원들이 "여성이면 임명직 자리에 만족할 것이지 왜 선거에까지 나가려고 하느냐"는 거부반응을 보였다. 불과 5년여 전의 일인데도 지금과는 인식이 많이 달라져 격세지감을 느낀다.

▶ 몽겔라=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나에게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은 "여자가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과 싸우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 스스로 강한 확신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내 능력을 입증해 그런 의심을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남자들끼리의 네트워크에 끼어드는 것도 힘들었다. 남자들과 네트워크를 맺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남성 위주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 박=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는 것은 이제 세계적인 흐름인 것 같다. 한국도 이 같은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앞으로 몽겔라 의장과도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여성 문제와 정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 몽겔라=세계 여성 지도자들의 원탁회의를 한번 추진해 보자. 마거릿 대처 등 은퇴한 여성 지도자에게 한 수 배우는 자리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표와도 그런 자리에서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웃음)

▶ 박=좋은 생각이다. 앞으로 그런 자리를 한번 만들어 보자.

◆ 몽겔라 의장은=탄자니아의 다에 살람 대학을 졸업한 뒤 '동아프리카입법의회' 회원으로 출발해 여성부 장관, 국토 천연자원 및 관광부 장관, 대통령정무실 무임소장관 등을 역임했다. 유엔의 '여성문제와 발전을 위한 사무국' 특사 등으로 여성권익의 수호를 위해 힘써 왔다. 2004년 아프리카 53개국의 의회를 대표하는 범아프리카의회의 첫 여성의장으로 선출됐다.

특별취재팀=문경란 여성전문기자, 홍주연.박성우.박수련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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